송재숙 씨가 아버지 송영환 일병의 영정 앞에 하얀색 카네이션을 바치고 손을 모으고 있다. 송 씨는 5년 전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한 덕분에 아버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사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2025년 5월 8일, 여든 가까운 나이의 송재숙 씨가 아버지 송영환 일병의 영정 앞에 카네이션을 바쳤다. 아버지에게 평생 처음 바치는 어버이날 꽃이었다. 송 씨가 6·25전쟁 발발 후 자원입대한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하기까지는 75년이 걸렸다. 2013년 9월 강원 동해시 망상동 일대에서 고인의 유해가 발굴됐고 신원 확인까지는 11년이 더 걸렸다. 그리고 올해 어버이날을 앞두고 송 씨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함께 진행하는 '6·25 전사자 얼굴 복원 프로젝트'의 첫 성과였다. 이 프로젝트는 발굴 유해에 3차원(3D) 기술을 적용, 생전 모습을 구현하는 사업이다. 송 씨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어릴 때 아버지가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면서 "아버지의 젊은 시절 얼굴을 보니 감격스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6·25전쟁 때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호국영웅들 가운데는 송 일병처럼 사진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유해를 발굴한 후 신원을 확인하면 국유단은 1년에 두 차례 국군 전사자 합동 안장식을 진행한다. 이때 사진이 없어 빈 액자를 놓고 얼굴 없는 행사를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2024년 8월부터 6·25 전사자 얼굴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한 이유다. 프로젝트는 국유단 이규상(48) 중앙감식소장의 아이디어였다. 이 소장은 "얼굴 없는 안장식이 안타까워서 유족에게 영정 사진이라도 선물하자는 뜻에서 국과수와 전사자 얼굴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2015년부터 발굴된 유해의 감식을 맡고 있다. 감식은 산야에 묻혀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낸 유해에 이름을 되찾아주는 일이다. 3D 스캐너, 치아 엑스레이 등 정밀 감식장비를 활용해 유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유전자 검사용 시료를 채취한다. 수집한 정보는 각종 기록, 유전자 비교검사 등을 통해 유해의 신원을 밝히는 데 활용한다.
다만 전사자 신원 파악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부족해 현재로선 신원 확인이 쉽지 않다.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 채취가 현재로선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공무원 사칭 사기가 이어지면서 참여율이 높지 않다. 그간 1만 1469구의 국군 유해를 발굴하고도 신원을 확인한 영웅의 수가 256명에 불과한 이유다.
호국보훈의 달, 국유단 신원확인센터 내 중앙감식소에서 이 소장에게 6·25 전사자 얼굴 복원 프로젝트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발굴한 두개골을 기초로 얼굴 복원을 진행한다고. 발굴한 유해 가운데 두개골의 잔존 정도가 좋으면서 얼굴 특징이 도드라지는 유해를 선정해 복원했다. 이번에 복원한 송영환 일병은 광대뼈가 발달하고 콧대가 살아 있었다. 예상외로 완전한 형태를 갖춘 두개골은 찾기가 힘들다. 송 일병도 왼쪽 광대뼈가 없었으나 오른쪽과 대칭을 맞춰 모습을 구현했다.
국과수와 함께 프로젝트를 추진했는데 각각의 역할이 궁금하다. 국과수는 변사자 신원 확인, 실종자를 찾기 위한 얼굴 복원 연구를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전사자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는 우리와 접점이 많다. 2024년 6월부터 진행한 이번 프로젝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국유단은 대상 유해를 선정하고 얼굴 복원을 위한 기초 작업인 컴퓨터 단층촬영(CT)을 위해 두개골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국과수는 유해 CT를 찍은 뒤 이를 바탕으로 얼굴을 복원하는 세부 작업을 맡았다.
뼈 모양만으로 얼굴 생김새를 추측할 수 있나? CT 촬영은 물체를 여러 구획으로 나눠 위, 아래, 양옆 등 다양한 각도로 찍기 때문에 얼굴의 기본적인 형태를 추측하는데 용이하다. 여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국과수의 피부 두께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반영해 피부를 입혔다. 눈매는 눈확이라고 하는 두개골의 눈구멍을 통해 추측했다. 눈동자색 등은 전형적인 한국인의 특징을 살려 완성했다. 20대 초중반이라는 연령대도 고려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이규상 중앙감식소장이 6·25 전사자 얼굴 복원 프로젝트 1호 송영환 일병의 영정을 들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대상 유해를 선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형태가 온전한 유해를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복원 작업을 맡은 국과수 유준열 연구원은 얼굴의 형태부터 눈, 눈썹, 머리카락까지 하나하나 결정하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다고 했다. 고인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기 위해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어 세세한 부분까지 함께 토의하며 완성해나갔다. 얼굴 복원 대상 유해는 총 4구가 더 있는데 이들의 영정 제작에도 정성을 다하려고 한다.
영정 속 군복 등은 모두 고증을 거쳤다고. 6·25전쟁 당시 상황을 그대로 복원하고 싶었다. 군복부터 철모, 단추까지 군 관련 물품을 수집하는 전문가들을 찾아 협조를 구했다. 국과수에서도 핸드 스캐너로 유품들을 빠짐없이 스캐닝했다.
70년간 땅속에 묻혀 토양화가 진행된 6·25 전사자들의 유해가 뒤섞여 있다. 국유단 중앙감식소는 뒤섞인 각각의 유해에서 시료를 채취해 유전자를 분석, 유해를 구분한다. 사진 C영상미디어
70년간 땅속에 묻혀 토양화가 진행된 6·25 전사자들의 유해가 뒤섞여 있다. 국유단 중앙감식소는 뒤섞인 각각의 유해에서 시료를 채취해 유전자를 분석, 유해를 구분한다. 사진 C영상미디어
어떤 절차를 거쳐 전사자 유해를 감식하는지도 궁금하다. 감식단은 전투 기록이나 관련 제보를 받아 실시한 발굴 작업을 통해 찾아낸 유해의 신원을 밝히는 일을 한다. 발굴은 땅이 얼어붙은 겨울철을 빼고 연중 이뤄진다. 땅을 조금씩 깎아내려가는 과정에서 유품이나 유해로 추정되는 뼈가 발견되면 그때부터는 전문 발굴병이 미세하게 발굴을 시작해 유해를 수습하고 세척을 거쳐 본격적인 감식에 들어간다.
여러 구의 유해가 섞여 있는 경우는 어떻게 구분하나? 먼저 해부학적인 자세 등을 토대로 1차 구분을 한다. 정황상 포탄에 의해 포격을 받았거나 최초 매장 지역에서 이탈해 일부분만 섞인 유해는 이 방법으로는 구분이 어려워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고 유전자 검사를 거쳐 구분한다. 2024년 말 두 개의 구덩이에서 8구, 11구의 유해를 한꺼번에 발굴한 적이 있는데 일부 부위만 남은 유해가 섞여 있어서 하나하나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다.
발굴 유해 중 신원 확인이 안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들었다. 아무리 많은 유해를 발굴하더라도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가 없으면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더 많은 유가족 시료가 필요하다. 또 70년 이상 땅속에 묻혀 있으면서 진행된 토양화(뼈가 흙으로 변함)로 DNA가 아주 잘게 잘려 유전자 검사가 어려운 경우에도 확인이 쉽지 않다.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가 관건이겠다. 유가족 DNA 시료 채취를 계속하고 있지만 전사자의 직계가족 대부분이 70대가 넘는 고령이라 그 수가 적다. 매칭 확률을 높이기 위해 8촌까지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국유단 유가족관리과에서 기록을 바탕으로 유가족을 접촉할 때도 어려운 점이 많다. 모르는 전화는 잘 안 받는 데다 방문해서 설명해도 잘 믿지 않아서 설득하는 데 애를 먹는다.
현재 기술로는 6촌까지만 구분이 된다고? 유전자 분석을 통해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범위는 5촌 내지는 6촌까지다. 하지만 향후 분석 기술이 더 발전하면 유가족의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서 8촌까지 시료를 채취한다.
신원 확인된 유해 수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발굴지 조사 단계부터 되돌아보며 우리가 놓친 점은 없는지, 추가적인 단서는 없는지 찾고 있다. 기존에 유전자 분석을 실시한 자료들도 재분석하며 신원 확인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따로 분류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유해의 시료를 다시 채취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신원 확인 빈도가 점점 늘고 있다.
감식소 활동 중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을 꼽는다면? 신원이 확인돼서 유해보관소에서 완전히 반출될 때다. 3년 전부터 반출 수가 늘어 매년 20구 이상의 유해가 반출 중이다. 반출 전에는 최종적으로 유해의 잔존 부위를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한지에 포장하는데 이 과정을 진행하는 순간순간마다 안도감이 들면서 보람을 느낀다. 유해보관소에는 신원 확인이 되지 않아 2000년에 발굴되고도 25년간 가족을 찾지 못한 이들이 있다. 반면 운 좋게 발굴된 당해에 신원 확인이 이뤄져 바로 떠나는 분도 있다. 한 분이라도 더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드리고 싶다.
인터뷰 후 이 소장의 안내를 받아 감식 대기 중인 유해들을 살폈다. 땅속에서 보낸 세월이 지상에서의 시간보다 더 길었던 이들, 호국영웅들의 유해는 마치 나뭇가지와 같았다. 한때는 늠름한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였을 그들이 하루빨리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가족 품으로 돌아가 편히 쉴 수 있기를.
고유선 기자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신원 확인된 유해 매년 두 차례 합동 안장식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6·25전쟁 기념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2000년 육군이 전사자 유해 발굴을 시작하면서 태동했다. 2007년 국방부 소속으로 정식 창설돼 유해 발굴과 감식,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 등을 맡고 있다.
발굴된 국군 유해는 발굴 시 전통방식에 따라 오동나무관에 입관해 태극기로 포장해 예우하며 가까운 군부대에 설치된 임시 봉안소로 옮긴다. 중앙감식소로 이송할 때도 봉송 전용차량을 이용한다. 신원 확인 후에는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 발굴 결과 설명, 신원확인통지서 및 고인의 유품이 든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는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진행한다.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화장 후 1년에 두 차례 여는 합동 안장식 때 유가족의 뜻에 따라 호국원이나 현충원에 안장한다. 국유단은 국군 유해 발굴 시 유엔군, 북한군, 중국군 등의 유해를 수습하기도 한다. 국군 유해는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유해보관소에 보관하며 유엔군은 해당국에 인계한다. 매년 인계하는 중국군을 비롯해 북한군은 인도적 차원에서 별도 적군 묘지에 임시 매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