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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기행 폭싹 속았수다! '제주 용머리해안서 맛본 고사리해장국' 오늘만큼은 고사리해장국으로백만 년을 관통한다. 자연도, 인간도, 이 감사한 음식을 맛 봬 준 식당 주인장도, 무엇보다 타향살이를 잘 견디고 언니의 제주 손발이 되어준 여동생도, 우리 모두 다들 "폭싹 속았수다."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인기가 사그라지지 않는 이 봄! 유채와 벚꽃이 절정인 제주에 가고 싶어, 또 엉덩이가 들썩인다. 봄처럼 싱그러웠다가 한여름같이 그늘 드리우며 푸르렀던 사람, 가을처럼 아름답다가 종래 겨울같이 포근했던 '애순'과 '관식'이 지금도 제주 바당에 있을 것 같아서 이번 제주를 향하는 하늘길은 왠지 더 꽁냥거렸다. 방송작가라는 직업 덕에 전국 어지간한 곳을 많이 다니긴 했지만, 제주만큼은 특별하다 못해 굉장히 비밀스럽도록 소중하다. 처음엔 이국적인 에메랄드빛 바다에 반했고 다음은 산인 듯 언덕인 듯 나지막한 '오름'에 반한 나는 아이가 어릴 때 제주서 한 달 살아보기도 했다. 오전엔 용눈이오름, 백약이오름, 금오름, 새별오름 등 오름을 전전하고 한낮에는 계곡서 발 담근 채 책 읽거나 곶자왈을 거닐고,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가 가신 오후에는 하도나 세화 바다에 몸 담그던, 조금 젊은 시절의 요망한 계집 '애순' 같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관광객들이 몰려들던 제주이건만 지금은 죄다 일본, 중국, 베트남 등 해외여행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빠지는 터라 제주 인기는 전만 같지 않다. 워낙 대표적인 국내 관광지라 높은 물가를 비롯해 몇 가지 발목을 잡는 이슈가 있긴 하지만 국내 여행 1번지 제주는 여전히 이름값을 하는 매력적인 땅이다. 특히 십 년 만에 다시 다녀온 '용머리해안'은 유일하게 로컬100에 이름올린 제주의 유산으로서 제주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아직 제주 사람 중에도 그 가치를 몰라서, 혹은 시간이 맞지 않아서 가본 사람이 많다는 용머리해안. 무엇보다 바닷물이 빠지는 물때가 맞아야 하고 비바람이 거세면 출입이 금지되기에 매일 오전 9시부터 문을 여는 관광안내소에 입장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필수다. 미끄럽지 않은 편안한 신발을 신고 용머리해안으로 향한다. 용머리해안이 자리 잡은 서귀포시 안덕면에 이르기 전부터 저 멀리 시선을 사로잡는 커다란 돌덩이는 '산방산'이다. 용머리해안에서 본 산방산.(필자 제공) '산방산' 하면 설문대 할망이 한라산의 봉우리를 뽑아 던진 돌산으로 통한다. 실제 백록담 주변 둘레와 산방산 둘레가 비슷하다니 참으로 그럴싸한 이야기다. 그러나 신화는 그저 신화일 뿐. 우뚝 선 산방산은 한라산 이전에 생성됐다. 그리고 산방산과 한 묶음처럼 제주의 지질학적 특징을 보여주는 용머리해안은 한라산과 산방산보다, 그리고 무려 제주 본토가 생기기 훨씬 이전에 만들어진 화산체다. 명실상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땅인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00만 년 전 얕은 바다에서 화산 폭발이 일어났다. 수성화산 분출은 단 한 번, 단기간에 끝나는 게 아니라 간헐적으로 여러 분화구에서 계속되었다. 화산 분출 도중에 화산재에 분화구가 막히면서 분화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돼 각기 다른 3가지 방향으로 쌓여있는 화산재 지층을 볼 수 있는 곳이 용머리해안이다. 오랜 기간 파도에 쓸려 화산체가 깎여 나가고 다른 곳에서 수증기를 타고 날라 온 화산재가 다시 쌓이고 또 바다와 바람에 깎여나간 제주 최초의 땅이자 태곳적 땅 용머리해안. 제주 용머리해안.(필자 제공) 어딘들 마찬가지겠지만 용머리해안만큼은 사진이나 영상이 아니라 직접 봐야한다. 용암과 바다,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낸 풍경에 압도당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다. 검은 현무암과 옥색 바다가 기묘하게 얽히고설키는 곳에 서면 - 갖은 풍파 속에서 이 땅이 지켜온 100만 년 세월의 장엄한 무게가 그려진다. 작은 방처럼 움푹 들어간 굴방이나 드넓은 암벽의 침식 지대가 펼쳐져 장관을 연출하고, 오랜 세월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사암층과 파도가 만들어낸 해안 절벽을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다. 안덕면 사계리와 화순리 경계에 있는 용머리는 바위가 용의 머리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란다. 이 땅이 영험한지라, 제왕의 탄생을 우려한 진시황이 사자 고종달을 보내 이곳의 혈맥을 끊기를 명했다. 가히 산방산에 영기가 서려 있고, 산방산 남쪽 밑은 용이 날 자리가 틀림없다고 여긴 진시황제의 사자는 마침내 용의 허리와 꼬리를 끊었다. 그때 산방산이 몇 날 며칠에 걸쳐 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바위에서는 피가 흘렀다고 전해진다. 가까이 산방산을 마주한 용머리해안에 서 있노라니, 마치 산방산을 절규와 눈물을 밟고 선 양 오묘하다. 용의 피가 솟구쳐 만들었다는 그림 같은 기암절벽들을 시선을 사로잡는 가운데, 때로는 솟구치는 용암의 증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며 뻥뻥 구멍 뚫린 자국이며 시루떡같이 층층이 쌓인 지층 등 제주 최초의 속살을 만나는 환희가 있다. 바닷물이 철썩이는 곳에선 거북손과 갖은 어패류들이 단단히 발을 붙이고 있다. 제주 할망과 아낙들이 멍게며 해삼이며 좌판을 펴고 관광객들을 붙잡는다. 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짧디짧은 인생은 그저 겸손해진다. 놀멍 쉴멍 걸으멍 - 더하여 쉴 새 없이 사진 찍으멍 걷다 보면 딱 한 시간이 걸리는 용머리해안 - 이 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두말할 것 없이 고사리해장국이다. 태초부터 화산의 땅이라는 숙명은 물과 곡식의 부족으로 가난이라는 단어를 이고 살았다. 이 땅에서 물이 많아야 하는 논농사는 어불성설. 오랫동안 제주를 먹여 살린 두 가지 작물은 고사리와 메밀이었다. 다년생 양치식물 고사리는 길고 튼튼한 뿌리로 화산암에서도 뿌리를 단단히 내렸고 빗물을 저장했다. 곶자왈에서도 한라산 표고 1000m 이상에서나 볼 수 있는 좀고사리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최북단 두만강이나 압록강에까지 서식하는 골고사리, 큰지네고사리 등 북방계 식물이 군락을 이룬다. 이 고사리가 제주 생태계의 시작이자 식재료의 시작이래도 과언이 아니다. 독성이 있지만, 우리 민족은 예부터 이 고사리를 삶은 뒤 말려서 독성과 쓰린 맛을 제거한 뒤 일 년 내내 즐겼다. 제사나 명절에도 고사리를 올렸다. 하물며 먹을 것 부족한 제주에서 고사리가 얼마나 귀한 식재료였는지 말해 무엇하리. "아직 길 잃음 사고 주의 안 뜬 것 보면 고사리 철은 조금 이른가봐." 제주가 좋아서 아예 제주 모경찰서로 발령받은 여동생이 안내를 자처한다. 고사리는 날 때 톡톡 끊어주면 두세 번 더 키워서 먹을 수 있다니 왜 산으로, 들로 아낙들이 바지런히 나서는지 알 수 있다. 고사리해장국은 제주 사람들의 '소울푸드'다. 예부터 논농사 못 짓는 제주에서 소보다는 돼지가 키울 수 있는 가장 친근한 가축이었고 어지간한 잔치에서는 항상 돼지가 멱을 따며 잡혔다. 도마에 뭉텅뭉텅 썰어 내는 돔베고기며, 고기붙이 나누고 나서도 돼지 뼈로 곤 육수는 어디든 활용 가능했다. 해조류 모자반을 넣고 뭉근하게 끓이면 '몸국(모자반국)'이 되고, 뼈붙이 덩어리를 한 개라도 넣으면 '접작뼈국'이 되고, 고사리를 넣고 끓이면 '고사리해장국'이 됐다. 육지에서 즐기는 '육개장'에서 보듯 고사리는 소고기를 대신하는 식감과 질감을 갖고 있는 터, 여기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가루까지 풀면 걸쭉하면서 감칠맛도 은은하게 탑재한 고사리해장국이 된다. 김이 폴폴 나는 고사리해장국을 보면 생긴 건 메밀가루 때문에 약간 갈색이 섞인 거무튀튀한 빛깔이지만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으면 이내 구수한 맛이 일품인 고사리와 메밀 쌍두마차가 혀를 부드럽게 자극한다. 고사리와 메밀가루의 맛이 조화로운 고사리해장국.(필자 제공) 메밀 전분이 풀어져서 걸쭉한 국물은 전혀 자극적이지 않다. 누구 말처럼 "나 고사리야 나 메밀이야" 하는 정도랄까? "제주 사람들은 이 맛을 '베지근하다'고 표현하거든. 베지근하다는 말로 싹, 정리 된다." 벌써 제주 생활 5년 차에 접어든 여동생이 아는 체를 제법 한다. '베지근하다'는 제주 사투리로 고기 따위를 푹 끓인 국물이 구미가 당길 정도로 맛있다는 의미다. 기름진 맛이 깊으면서도 담백할 때 이 표현을 쓰는데, 그만큼 속을 든든하게 채운다는 의미도 있다. 어쨌거나 "국물맛이 베지근하우다!" 하면 맛을 제대로 칭찬하는 최상급 표현이란다. 밥 한 공기 말면 고사리해장국의 농밀한 국물이 더욱 걸쭉해진다. 흡사 죽처럼 되직한 고사리해장국은 입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술술 넘어간다. 제주 사람들의 인생은 가난과 통한의 연속이었으나 이들은 기어이 이리도 담백하고 유순한 맛을 낳았다. 고사리해장국집 창 너머로 유채꽃 일렁이고 우뚝 솟은 산방산이 보인다. 산방산 발아래 엎드린 용머리해안도 그려진다. 유채꽃이 핀 산방산.(필자 제공) 오늘만큼은 고사리해장국으로백만 년을 관통한다. 자연도, 인간도, 이 감사한 음식을 맛 봬 준 식당 주인장도, 무엇보다 타향살이를 잘 견디고 언니의 제주 손발이 되어준 여동생도, 우리 모두 다들 "폭싹 속았수다." ('폭싹 속았수다'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의미의 제주도 방언) ◆ 제주 사계리 용머리해안 주소|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112-3 영업시간|연중 상이 (* 입장 시간 꼭 확인) 문의전화|064-760-6321 ※ 주차장 있음·제주도민 외 입장료 있음 ◆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KBS '한식연대기', 넷플릭스 '삼겹살 랩소디', 스카이트래블 '한식기행 - 종부의 손맛' 등 우리 식문화를 소재 삼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집필했다. 방송작가 23년 차지만 언제나 현역~! 지역마다의 고유한 맛과 멋을 알리는 맛깔난 글을 쓰고 싶다. 2025.04.03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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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대극복 일과 가정의 균형, 저출생 극복의 새로운 해법 저출생 문제는 단순한 인구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사회, 교육, 국가 전반에 영향을 미쳐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게 나타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근로자가 공동으로 새로운 해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저출생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위기로 자리 잡고 있다. 단순히 출생률 감소를 넘어, 경제 생산인구 감소, 고령화, 일자리 감소, 그리고 지역기능 소멸 등 여러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국가 경쟁력과 사회 서비스 저하 뿐 아니라,국방력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제2의 도시로 불리는 부산 중구의 인구는 2025년 2월 기준 3만 7370여 명이다. 한국방송공사(KBS)와 국토연구원이 분석한 사실에 바탕을 둔 미래 시나리오에서 부산 중구는 기능소멸이 16년 남았으며 사회 서비스의 제공이 어려워질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또한, 2025년 현재까지 부산시에서 문을 닫은 학교가 50곳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근로자들이 공동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 저출생으로 인한 학령 인구 감소로 올해 문을 닫는 초·중·고교가 전국에 49곳인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사진은 24일 오전 올해 3월 1일자로 폐교를 앞둔 경기 안산시 상록구 경수초등학교의 모습. 2025.2.24.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정부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일·가정 양립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고 기업들이 이를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들이 대체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정부는 기업 성장 컨설팅, 대체 인력 지원금, 육아휴직을 위한 재정적 인센티브, 세제 혜택 등을 다각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유연근무제, 육아휴직과 대체 인력 제도를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실효성 있게 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기업들이 모성보호제도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을 통해 벌칙적 요소들을 부각시키기 보다 기업들이 좋아하는 이익을 기반으로 한 모성보호제도를 통해 기업에 이득이 되는 부분들을 더욱 강조하여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정책적 지원을 신설·강화해야 한다. 정부와 더불어 기업도 저출생 문제 해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기업 내에서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 등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를 도입하고 활성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러한 제도들이 잘 작동하면 근로자들의 복지가 향상되고, 기업의 생산성도 증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롯데 그룹은 남성 육아휴직 1개월 의무화와 같은 정책을 도입하여, 조직 내 동료들이 대체 인력을 대신해 육아를 지원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변화는 기업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며, 직원들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위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이를 성과 평가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육아휴직 의무화를 통해 저출산 문제에 기여하면, 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과 동시에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이직률을 줄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기업들이 이와 같은 제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단순히 사회적 책임을 넘어, 장기적으로 인건비 절감과 생산성 향상, 인재 확보에 도움이 되기에 적극적인 사회적 동참이 필요하다. 기업의 이러한 노력은 근로자들도 변화시킨다. 특히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평등하게 사용하는 것은 가정 내 역할 분담을 개선하고, 여성의 경력단절을 방지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실제로, 2005년 남성 육아휴직자는 200여 명이었지만, 현재는 4만 명을 넘었고, 전체 육아휴직자의 30% 이상이 남성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는 정부 지원과 사회적 인식과 기업 문화의 변화가 맞물려 이루어진 성과이다.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이는 단순히 가사와 육아의 분담을 넘어서, 사회 전반의 평등한 노동 분배를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성 육아휴직 사용이 증가하면, 여성들이 경력을 유지하면서 노동 시장에 계속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이는 경력단절을 방지하고, 가족과 기업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2025년 민주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경력 단절률은 61.9%에 달하는 반면, 남성은 40.6%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 20%였지만, 남성은 4.5%에 불과했다. 이는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이 경력단절을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롯데그룹의 사례를 보듯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는 정책이 시행되면, 아빠들의 육아 참여가 늘어나고, 이는 가족 내 역할 분담을 공평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서울시 100인의 아빠단은 다자녀 가정이 55%이며 다자녀 가정에서 아빠의 육아 참여가 증가할수록 엄마의 사회진출은 활발해졌다고 한다. 2024년 둘째아 출산자는 전년 대비 2.1% 증가한 약7만 5900명에 달했다. 이는 아빠들이 육아에 참여하면서 출산율 증가에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여성가족부의 통계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자가 증가하면서 여성의 경력 단절도 줄어드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인천 미추홀구 아인병원에서 신생아들이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다. 2025.2.26.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저출생 문제는 단순한 인구 감소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사회, 교육, 국가 전반에 영향을 미쳐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게 나타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근로자가 공동으로 새로운 해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정부는 기업과 근로자에 대한 파격적인 혜택을 강화하고, 기업은 일·가정 양립을 실현하는 조직문화를 개선하며, 근로자는 육아휴직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특히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이는 가정과 기업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결국 사회 전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정부, 기업, 근로자가 서로 협력하여 인식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해법에 도달해야 한다. ◆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저출산고령화위원회 자문위원이자 가치자람사회적협동조합에서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으로 근무 중이다. 보건복지부 100인의 아빠단으로 활동하며 세 아이와 함께 소통하는 아빠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빠육아와 남성육아휴직 인식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5.04.01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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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대극복 시설에서 '생활'을 찾다 국가의 유니트케어 도입 확대 노력은 환영할 정책이며 초고령사회 진입 국가로서 서둘러 정착되어야 할 사업이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장기요양시설이 재택 요양돌봄의 또 다른 장소로서 연계·확장된 개념으로 안착하여 Aging in Place 실현을 견인하기를 기대한다.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우리는 체중의 증감과 체형의 변화를 경험하며 자신에게 더 알맞도록 옷가지를 바꾸게 된다. 우리나라 역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베이비부머가 어르신이 되는 등 상황 변화에 따라 어르신 돌봄이 변화하고 있다. 시설급여 장기요양기관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어르신은 건강한 상태에서 노화와 질병 등의 이유로 돌봄이 필요한 상태로 바뀌게 되면 장기요양급여 등급판정을 통해 장기요양보험으로부터 요양과 돌봄에 사용되는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어르신의 요양과 돌봄이 자신의 집에서 이루어지면 재가급여, 요양시설에서 이루어지면 시설급여이다. 시설급여 장기요양기관은 시설의 정원을 기준으로 9인까지 생활할 수 있는 공동생활가정과 10인 이상이 함께 지내는 요양시설로 구분된다. 기존 노인요양시설은 의학적 치료와 공급자 중심의 획일화된 서비스에 중점을 둔 의료보호시설로 운영되었으며, 시설에서 생활하는 어르신은 기존의 사회적 관계성이 단절된 채 사생활과 존엄성, 즐거움과 같은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TV 시청 등으로 시간을 보내며 "의미 없는 매일"을 지내야 하는 곳이었다. 요양시설에 들어가는(입소) 것은 곧 죽을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현대판 고려장과 다를 바 없다고 많은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 이유일 것이다. 어버이날인 8일 오전 광주 북구 동행재활요양병원에서 입소환자가 가족과 영상통화를 하고있다. 2024.5.8.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러한 노인요양시설이 최근 바뀌고 있다. 공급자 중심의 시설환경은 이용자 중심의'집'과 같은 생활환경과 서비스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기존의 다인실과 복도형 배치의 일률적 평면구성은 안정적 개인공간 중심의 소규모 생활공간 배치와 구성으로 변화하고 있다. 시설에서의 생활이 집과 같은 환경이 된다는 것의 가장 핵심은 시설에서의 식사와 활동 등빼곡하게 짜여진일정에 어르신을 끼워 맞추는 방식이 아닌 어르신이 원할 때 식사하고 활동할 수 있음에 있다. 평면구성과 공간배치 역시 시설에서의 사생활 영위를 위한 개인실과 요양돌봄의 공동생활을 위한 거실과 프로그램실이 집과 같이 구별과 연계를 반복하며 공간적 위계를 갖는다. 기존 요양시설(좌)과 유니트케어 요양시설(우) 평면구성. (출처='일본 유니트형 노인요양시설의 기능별 공간구성 분석'- 남윤철, 한국농촌건축학회논문집.20(3)) 집과 같은 생활 지원을 위해 개인실에 화장실과 세면대 등이 설치됨은 당연하다. 기존의 공급자 중심 시설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살펴보면 입소자의 자부담과 국가의 지원이 합쳐져 시설 운영자에게도 아무쪼록 남는 장사가 되어야 할 터인데, 법이 정하는 시설 유형별 최소 인력배치 기준과 요양돌봄 행위의 수가 산정에서는 요양돌봄의 최대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요양돌봄자의 효율적 조치 요구는 다인실과 복도형 배치, 일정에 따르는 식사와 활동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급자 중심의 급식과 요양, 일상생활 필요 편의 제공의 기본적 돌봄이 주어지는 대규모 집단생활의 병원 같은 환경에서 보호받고 수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기존 어르신 요양시설 상황도 우리나라의 기존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 초 미국 요양시설 거주 노인의 권리 보장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며 인간 중심 돌봄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며, 시설에서의 간호보다는 시설에서의 집과 같은 생활 영위가 주목받았다. 일본은 1990년대 후반 집과 같은 환경에서 요양서비스 제공을 위한 10명 정도를 하나의 생활단위(유니트)로 묶어 유니트별 요양돌봄을 편성, 요양시설에서 공급자의 요양돌봄 단위와 이용자의 생활단위를 소규모로 일치시키는 유니트케어를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기존 다인실, 복도형 구조를 개인실 및 거실 구조로 개선하고 입소 어르신이 시설에서 "지내는" 것이 아닌 "생활"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일본의 유니트케어 시행 이후 변화된 시설 생활 어르신의 삶의 행태도 기존에는 침대에만 누워 계시던 상황에서 거실과 개인실에서 활발한 여가·교류 시간이 증가하였으며, 정책 시행이 자리를 잡아가며 요양보호사들의 돌봄 근무 강도는 감소하며 소규모 유니트 중심으로 보다 세심한 요양돌봄 제공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연구결과 확인되었다. 나아가 유니트케어 시설로 전환됨에 따라 발생하는 입주정원 감소분을 지역의 소규모 다기능 서비스 거점(주간보호센터 등)으로 이주시켜 요양시설의 기능이 지역사회 차원에서 연계되었으며, 시설 생활 어르신의 지역 공동체 유대감이 향상되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인간 중심 돌봄과 시설에서의 집과 같은 생활 지원을 위해 보건복지부는 "제3차 장기요양기본계획(2023~2027)"에서 한국형 유니트케어 도입을 제시하고, 2024년 3월에는 "제1차 유니트케어 시범사업 시행계획"을 공고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유니트케어 도입 지원을 위한 국가 시범사업이었던 만큼 최소한의 시설요건과 인력배치와 교육요건이 제시되었으며, 공모사업 설명회에도 많은 요양시설 운영 관계자의 참석과 질의응답이 이루어졌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7월 제2차 시범사업 운영을 위해 4월 중 유니트케어 시범사업 참여기관 공모를 진행할 예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운영 중인 약 6000개 시설급여 장기요양기관이 모두 유니트케어를 도입할 수 있는 실정은 아니다. 주로 상가 등의 근린생활시설로 건축된 공간을 임차하여 운영되는 9인 이하의 공동생활가정 시설과 주로 개별 건물을 건축하여 운영되는 30인 이상의 요양시설은 기존의 편복도형 내부 평면구성의 변경과 개인실 중심의 편성이 쉽지 않고, 유니트 구성과 케어를 위한 간호사와 요양보호사 등의 인력배치 요건을 충족시키며 제한된 공간 내 개인실과 거실·프로그램실을 집과 같이 조성함과 동시에 이를 통한 시설 운영의 수익을 유지 또는 증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요양시설에서 지내시다 도무지 못 견디겠다고 퇴소하시고 살던 집으로 돌아오셔서 시설 대비 부족한 요양돌봄을 받더라도 '내가 원할 때 밥 먹고, 내가 원할 때 활동하는 게 좋다'라는 어르신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집과 같은 환경에서 인간 중심의 돌봄이 실현되는 것은 짜여진시설운영 일정에 어르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정든 집을 떠나 시설에서 지내실 수밖에 없는 어르신에게 맞추는 요양돌봄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의 유니트케어 도입 확대 노력은 환영할 정책이며 초고령사회 진입 국가로서 서둘러 정착되어야 할 사업이다. 하지만 전국에 확산되어 있는 기존의 장기요양시설이 유니트케어의 직접 적용이 어려운 상황을 고려하여 '준유니트케어' 정도라도 적용해 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시설 운영자와 이용자가 보다 빠르게 유니트케어를 경험하고 필요성을 공감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장기요양시설이 재택 요양돌봄의 또 다른 장소로서 연계·확장된 개념으로 안착하여 Aging in Place 실현을 견인하기를 기대한다. ◆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건축공간연구원 고령친화정책연구센터장, 기획재정부 인구위기대응 TF 고령사회 대응반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현재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민간위원, 국토교통부 인구대응협의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령자 주거와 복지의 연계, 고령친화 공동체마을 등에 대한 고령친화 건축도시공간 정책연구 전문가이다. 2025.03.28 고영호 건축공간연구원 연구위원·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민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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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인생 평생 현역의 꿈을 실천하려면? 직장인이 끊임없이 시대의 변화를 읽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내거나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해나간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노력은 창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새로운 일을 통해 기존의 직장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에 설 수도 있고, 스카우트되어 갈 수도 있다.평생 현역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연구회 대표 "아니, 누가 일을 하기 싫어서 안 하나요? 일만 줘보세요. 일이 없잖아요?" 이런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청년실업이 넘쳐나고 있고 있던 직업도 사라지는 시대이다. 그러니 퇴직자들에게 돌아갈 일이 없지 않은가? 사실 그렇다. 그래서 퇴직자들이 일을 하려면 현역세대들이 할 수 없는 일이거나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려고 하지 않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가장 바람직한 건 현역세대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다. 현역시절에 해온 일과 미래의 직업을 연결시켜서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금은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동시에 새로운 일이 생겨나는, 이른바 창직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창직이란 '기존에 없던 직업이나 직종을 새롭게 만들어 쓰거나 재설계하여 새로운 개념의 직업·직종으로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창직전문가'라는 명함을 갖고 일하는 사람도 있다. 창직연구소, 창직교육원, 창직협회, 창직전문가 과정과 같은 단체도 생겨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 여성의 경제활동인구 증가, AI 등 첨단과학기술의 발전, 판매·의료 등 서로 다른 산업의 융합화 추세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 창직의 대상이 될 직업·직종 또한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다.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머리가 장년(長年)층 구직자가 일자리 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2025. 2. 19.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5년마다 발표되는 '한국직업사전'에 등재된 우리나라 직업의 수는 1969년의 경우 3260개였는데 2019년에는 1만 6891개로 늘어났다. 같은 시기 일본의 직업 수는 2만 5000개, 미국은 3만 654개였다. 우리나라도 2024년의 직업 수는 훨씬 더 늘어났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아이패드 화가, 반려동물 장의사, 인터넷 장의사, 정리컨설턴트와 같은 직업이 생겨났다는 말을 들은 일도 있다. 창직전문가인 맥아더스쿨 정은상 교장 같은 경우는 십수년 전부터 스마트기기와 페이스북 등 SNS를 활용하여 은퇴자들의 창직 지원 활동을 해왔다. 그동안 만들어 낸 직업만 해도 퍼스널브랜드 코칭을 통해 베이비부머들의 인생 이모작을 안내하는 자신의 일을 포함해 아이패드 닥터, 포토북 전문가, 여가생활 코치, 모바일쿠킹 스쿨, 토론학교 등 1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필자 또한 52년 전 금융투자업계에 입문할 때는 퇴직 후 노후설계 교육활동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창직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쑥스럽지만 창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 경험을 소개한다. 2000년대 초 펀드를 운용하는 한 자산운용사의 CEO를 맡고 있을 때의 일이다. CEO업무를 하면서 보니 펀드비즈니스가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운용만 잘 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투자자들이 단기시황 전망에 쫓겨 빈번하게 샀다 팔았다를 반복해서는 안되고 장기투자, 분산투자의 원칙을 지키도록 설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미국, 일본의 자산운용업계를 살펴보았다. 투자교육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케팅 활동의 일환으로 그 일을 시작했다. 이후 베이비부머세대들의 퇴직이 가까워 지면서 노후설계에 대한 질문도 받게 된다. 대답을 위해서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CEO에서 물러나면서 다른 데서 CEO 자리를 구해 몇 년 더 하는 것보다는 투자교육·노후설계교육을 라이프워크로 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한다. 한 금융그룹에 투자교육연구소 설립을 제안했다. 이 때의 경험을 통해 제안력의 중요성 깨닫게 된다.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지금까지 20년 넘게 이 일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투자교육, 노후설계 교육활동을 해오던 중 2020년에 코로나 사태를 만나게 된 것도 새로운 계기였다. 강의활동, 세미나 활동이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그 때 유튜브를 만난다. 유튜브 영상을 찍어서 올려보니 영상에 따라서는 조회수가 수백만 회가 넘게 나오는 것이다. 1년에 대면강의를 200회 한다 해도 1회에 평균 50명을 대상으로 한다면 1년에 1만 명 정도 밖에 들을 수 없다. 그런데 유튜브는 한번에 100만 명 넘게도 들을 수 있다. 투자교육, 노후설계교육에서 유튜브의 위력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물론 '창직'이라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필자의 경험 또한 우연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장인이 끊임없이 시대의 변화를 읽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내거나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해나간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노력은 창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새로운 일을 통해 기존의 직장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에 설 수도 있고, 스카우트되어 갈 수도 있다. 또, 퇴직 후에는 재취업이나 프리랜서 또는 창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평생 현역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 전 미래에셋 부회장대우증권 상무, 현대투신운용 대표, 미래에셋 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행복100세 자산관리 연구회 대표로 일하고 있다. 대우증권 도쿄사무소장 시절, 현지의 고령화 문제를 직접 마주하면서 노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품격 있는 노후를 보낼수 있는 다양한 설계방법을 공부하고 설파하고 있다. 2025.03.25 강창희 행복100세 자산관리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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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돋보기 멕시코 이민 120주년 '에네켄' 가고 'K-데킬라' 온다 앞으로 멕시코에서 한국인이 만든 테킬라가 얼마나 현지인과 세계인들을 사로잡을지 주목된다. 이제 그렇다면 "When life gives you lemons, ask for tequila and make it a party."라는 속담은 멕시코 한인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정길화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연일 화제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1960~1970년대 어렵게 살던 시절의 여성 서사, 성공 서사가 근간이다. 주연과 조연의 조화, 감칠 맛 나는 대사로 눈길을 끌고 있다. '폭싹 속았수다'라는 제목은 제주도 사투리로 '수고(受苦)를 많이 했다', '고생을 많이 했다'라는 뜻이다. '수고했수다'가 음운 탈락 등으로 '속앗수다'로 변했다는 설명도 있다. 덩달아 외국어 번역도 주목을 받는다. 이 드라마의 영어 제목은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이다. '인생이 당신에게 귤을 줄 때', 혹은 '살다가 귤이 생기면'이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이는 '상황이 어려워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극복하라'라는 뜻인데 미국 철학자 앨버트 허버드가 남긴 명언인 '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인생이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에서 왔다고 한다. 말인즉슨 당신이 원치 않는 '레몬' 즉 어떤 역경이 오더라도, 적극적으로 임해 이를 '레모네이드' 즉 좋은 기회로 바꾸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드라마의 영어 제목은 여기서 '레몬'을 제주도 특산물인 '귤'로 재치있게 바꾼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귤은 레몬보다는 먹기에 좋은 듯한데, 제작설명회에서 연기자 아이유는 "인생이 떫은 귤을 던지더라도, 그걸로 귤청을 만들어 따뜻한 귤차를 만들어 먹자"라는 뜻으로 풀이해 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구글링을 해 보니 연관검색어로 "When life gives you lemons, grab salt tequila."라는 말도 보인다. '인생이 당신에게 레몬을 주면, 소금과 테킬라를 잡아라'는 얘기다. 유머러스한 표현이라고 할까. 이 버전은 '힘든 일이 생기면 그냥 즐기면서 넘겨라'는태도를 말해 주는 듯하다. 테킬라를 마실 때 잔 주둥이에 레몬을 바른 다음 소금을 뿌린 접시에 테킬라를 따라 마시는 것에서 착안한 위트 있는 표현이다. 한술 더뜬다고나 할까. 나아가 이런 말도 있다. "When life gives you lemons, ask for tequila and make it a party!" '인생이 레몬을 주면, 테킬라를 달라고 해서 파티를 열어라!' 즉 힘든 상황을 유머로 넘기거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라는 얘기다. 테킬라가 나오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나라가 있다. 바로 멕시코다. 테킬라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술로, 블루 아가베 선인장의 밑동(피냐)을 증류해 만든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멕시코 이민 120주년이다. 기실 2025년에는 근현대사의 역사적 사건 중 10년 단위의 정주년(整週年)에 해당하는 계기들이 많이 있다. 운요호 사건 150주년(1875)을 필두로, 명성황후 시해130주년(1895), 을사늑약 120주년(1905), 을축년 대홍수 100주년(1925) 등 근대사의 어두운 사건들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광복 80주년(1945)을 비롯해, 6.25 발발 75주년(1950),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1965) 등이 뒤를 잇는다. 대부분 한국 현대사에 획을 긋는 굵직굵직한 일들이다. 여기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1905년의 멕시코 이민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로 120주년이다. 60 갑자(甲子)가 정확히 두 번을 돌았다. 멕시코 이민은 '에네켄 이민'으로 잘 알려진 대로 한인들이 처하고 겪은 인고와 수난의 역정(歷程)이다. 개인적으로 2005년 MBC에서 방송된 '이민 100주년 특집'을 제작한 인연이 있다. 제목도 '에네켄(henequen)'이다. 이 프로그램은 1부 코레아노의 노래, 2부 백년의 유랑, 3부 비바! 메히코레아노 등 3부작으로 구성되었다. 필자가 제작에 참여한 MBC '이민 100주년 특집' 시작 화면. 이민으로 보자면 1903년의 하와이 이민이 있었다.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노동자로 시작한 하와이 이민은 간난신고가 없지 않았지만 약 3년간 이민이 계속되는 등 비교적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중 황성신문에 실린 '묵서가(墨西哥, 멕시코를 뜻하는 한자어) 노동자'를 모집하는 '4년 계약. 주택 무료임대, 높은 임금, 질병시 의약 무료'의 광고는 한인들을 미혹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기성 높은 과장광고, 말하자면 '미끼'였다. 하와이 이민이 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면 멕시코 이민은 마이어스(J. Meyers)라는 이민브로커가 진행한 것이었다. 러일전쟁, 한일의정서 등 격동기에 처해 있던 대한제국은 이를 엄정하게 관리할 줄 몰랐던 것 같다. 광고에 현혹된 백성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고향을 떠났다. 1905년 4월 1033명의 한인들이 영국 상선 일포드호에 몸을 싣고 인천항을 출발했다. 가족 단위가 많았고 퇴역군인, 농부, 소수의 양반계급에 무당, 내시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 서해안 살리나 크루스에 상륙했고 이후 육로로 동해안 베라 크루스로 이동했다. 여기서 다시 배로 멕시코만의 프로그레소항에 도착한 후 기차를 타고 메리다에 도착했다. 한 달이 넘는 대장정이었다. 2005년에 한인 후손들은 100년 전 선조들이 처음 상륙한 살리나 크루스 항구를 답사했는데 당시 우리 해군의 '양만춘함'이 기념 운항을 통해 선상에서 이들을 반기기도 했다. 메리다에 도착한 한인들은 근동에 있는 20여개의 에네켄 농장에 배치되었다. 에네켄은 한때 '애니깽'으로 알려졌던 것으로,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선인장의 일종이다. 테킬라의 원료가 되는 아가베와는 종류가 다르다. 에네켄은 우리말로는 어저귀, 한자말로는 용설란(龍舌蘭)이다. 영어로는 사이잘삼(sisal hemp)으로서 선박용 로프로 쓰이던 식물이다. 해운산업에서 에네껜은 중요한 자원이었고, 유카탄에서는 이를 플랜테이션 작물로 재배하고 있었다. 멕시코 현지 한 농장에서 재배 중인 에네켄. 농장이 있던 곳은 열대기후 지역이다. 한인들은 오전 4시부터 해가 질 때까지, 여름 한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아래에서 에네켄 잎을 잘랐다. 날카로운 가시로 인해 손에서 피가 나기 일쑤였다. 변변한 치료약도 없던 시절이다. 광고와 달리 임금 체불에 임대주택과 식량도 직접 구입해야 했다. 농장에 고용되었으나 사실상 '농노(農奴)'의 처우에 가까웠다는 연구도 나와 있다. 인천이민사박물관에 가면 이들의 신산스런 삶을 생생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입니까. 한인들은 열악한 환경과 노동에 적응을 해나갔다. 그야말로 "살면 살아진다"(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중에서). 이들은 '고생을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로 학교를 설립해 아이들을 가르쳤다. 나아가 언젠가의 그날을 위해 무관 양성기관인 숭무학교(崇武學校)를 세워 군인을 양성했다. 십시일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해 상해 임시정부에 보내기도 했다. 100주년 특집 제작시 현지에서 이러한 흔적을 답사하면서 숙연한 감정이 들었다. 인천에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필자 제공) 현재 멕시코에는 에네켄 후손이 3만여 명 정도 살고 있다. 4세, 5세 등 세대가 진행되면서 외모나 언어는 현지화했으나, 한인후손회를 조직해 활동하거나 한류 문화를 적극적으로 즐기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견인하고 있다.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한인 출신으로 상원의원, 주대법원장, 병원장에 오른 이들을 만난 적도 있다. 멕시코 아시엔다(hacienda 농장)의 임노동자로 출발한 한인들은 120년간의 이민 역사 속에서 그들만의 '성공 서사'를 이루었다. 그러던 사이 조국 대한민국은 멕시코의 5대 교역상대국으로 성장했다. 화학섬유의 발달로 이제 선박용 로프를 위한 에네켄은 더 이상 재배되지 않는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선인장은 '블루 아가베'다. 세계적인 명성을 획득한 증류주 테킬라(tequila)의 원료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테킬라의 본고장 멕시코에서 K-브랜드로 도전장을 내민 교포 사업가도 있다고 한다. 이민 1.5세 이종훈 대표가 만든 '카사 피나(Casa Fina)' 브랜드다. 멕시코에 정식 등록된 테킬라 상표라고 한다. 테킬라는 할리스코 등에서 재배한 아가베로 제조한 것만 브랜드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품질관리와 인증이 까다롭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K-테킬라'를 표방하고 나섰다. 마치 멕시코 사람이 한국에 이민을 와서 전통 소주나 막걸리 브랜드를 만든 것과 다름 없다. 한국인이 만든 테킬라가 앞으로 얼마나 현지인과 세계인들을 사로잡을지 주목된다. 그렇다면 "When life gives you lemons, ask for tequila and make it a party."라는 속담은 멕시코 한인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되겠다. ◆ 정길화 동국대학교 한류융합학술원장, 전 한국국제문화교류원장MBC 교양PD로 '인간시대', 'PD수첩' 등의 프로그램 연출을 맡았다. '중남미 한류 팬덤 연구'로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MBC중남미지사장 겸 특파원을 거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장으로 K-콘텐츠와 한류정책을 연구하면서 '공감 한류' 전파에 기여하고 있다. 2025.03.25 정길화 동국대학교 한류융합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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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단상 봄이라 맛볼 수 있는 '초록에너지' 우체국쇼핑에서는 계절별로 제철 식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특히 매년 봄에는, '산나물 기획전'을 열어 생산자가 산지에서 채취한 싱싱한 산나물을 저렴한 가격에 전국의 식탁으로 보내고 있다.이맘때만 맛볼 수 있는 제철 산나물로'초록 에너지'를 충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재우 강원지방우정청 주무관 봄, 드디어 봄이 왔다.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불어오는 봄바람에 사르륵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얼마 전, 불혹의 나이가 되었지만, 봄이 오면 설레는 마음은 열여섯 살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으니 마음만큼은 사춘기 소녀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들뜨는 마음과는 별개로 몸은 영 말을 듣지 않는다. 나른하면서도 축 처지고, 무엇을 먹어도 별맛이 없고, 먹고 싶은 생각도 도통 들지 않으니 걱정이다. 이럴 때는 봄기운을 가득 담은 산나물을 먹어줘야지, 그러면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겠지 싶다. 사실 내가 산나물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체국에 입사할 무렵만 해도 지극히 어린이 입맛-속된 말로 초딩 입맛-이던 내가 산나물의 맛에 눈을 뜨게 된 데에는 제철 곰취의 공이 가장 컸다. 나와 곰취의 인연은 십여 년 전, 첫 발령을 받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5월의 화창한 봄날, 강원도의 한 우체국으로 발령받은 나는 금융 창구에 배치되었고, 함께 발령받은 동기는 우편 창구에 배치되었다. 월말이 지난 터라 상대적으로 한가했던 금융 창구와는 달리, 우편 창구는 제철을 맞은 곰취 덕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창구는 직접 택배를 보내러 온 고객들과 수레 가득 곰취 상자를 싣고 온 계약업체 관계자들로 북적였고, 전화벨도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당시 우체국에서는 전화로도 곰취 택배를 주문받았다. 그날 나의 동기는 반쯤 넋이 나간 채 우체국을 나섰다. 출근 첫날을 무사히 넘긴 서로를 격려하며 관사로 향하는데, 동기의 손에 까만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손에 든 게 뭐야?" "아, 언니. 이거 창구에 온 고객님이 나눠 주셨어요. 곰취래요." "곰취?" "네. 언니, 혹시 이거 어떻게 먹는 줄 알아요?"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렸던 동기는 자신보다 언니인 내 요리 실력이 그나마 더 나을 거라 믿는 듯했지만, 안타깝게도 나 역시 엄마 품을 처음 떠나 본 새내기 자취생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우리는 결국 근처 고깃집으로 들고 가서 식당에 양해를 구하고 쌈을 싸 먹는 방법을 택했다. 기상 우수인 18일 경남 거창군 가북면 우혜리 염길성씨 곰취 농장에서 염씨부부가 강추위 속 봄의 향기를 물씬 느끼게 하는 곰취 수확 작업을 하고 있다. (거창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2.18.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글지글 잘 구운 삼겹살 한 점을 싱싱한 곰취잎에 올리고, 쌈장 조금에 파채를 곁들인 쌈을 입에 넣은 순간, 아. 그때 처음 먹어 본 곰취 쌈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뻣뻣해 보이는 생김새와는 달리 연하고 아삭아삭한 식감, 쌉싸름하면서도 독특한 향을 가진 곰취는 삼겹살과 최고의 궁합을 자랑했다. 첫 출근으로 잔뜩 움츠러들었던 마음까지 치유되는 맛이었다. 그렇게 곰취와 사랑에 빠진 나는 그해 봄,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할 일이 생기면 곰취 택배를 보내며, 내게 산나물의 묘미를 알게 해준 곰취의 홍보대사가 되었고, 지금은 달래, 냉이, 쑥, 명이나물, 두릅, 눈개승마 등 봄에 나오는 모든 나물을 사랑하는 봄나물 애호가가 되었다. 봄철 산나물은 물론 마트나 재래시장에서도 손쉽게 살 수 있지만, 나는 주로 우체국쇼핑을 애용한다. 나를 위한 먹거리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연락이 뜸했던 주변 지인들에게 생존 신고(?)를 산나물 택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체국쇼핑을 통하면 어떤 업체가 믿을 만한지, 혹시 품질이 안 좋지는 않을지, 받는 사람에게 잘 전달될지 등의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 아마 내가 우체국 직원이 아니었더라도 우체국쇼핑의 단골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정사업본부는 인터넷 우체국 쇼핑몰, 우체국쇼핑 모바일앱을 운영하며 특산물, 제철 식품, 전통시장 상품 등 13만여 개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유기농·무농약 친환경 인증, HACCP, GAP 등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해 우수한 상품들을 제공하고 있어,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우체국쇼핑은 영세 판매업체를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며 판매자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나에게는 봄의 생기를, 농가에는 한해의 희망을 주는 '우체국쇼핑 산나물기획전' 안내 홍보물(강원지방우정청 제공) 지자체와 공공기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공동 홍보 마케팅을 추진하여 농어촌 소상공인 매출을 견인하고, 청년 창업농·창업기업의 안정적인 정착을 도우며, 입점 업체 및 공공·지자체 상품 콘텐츠 제작을 무료로 해주는 등 판로 개척을 이끌고 있으니, 그야말로 '지역경제의 첨병'이라 할 수 있다. 우체국쇼핑에서는 계절별로 제철 식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특히 매년 봄에는, '산나물 기획전'을 열어 생산자가 산지에서 채취한 싱싱한 산나물을 저렴한 가격에 전국의 식탁으로 보내고 있다. 우체국쇼핑에서 판매하는 대표 산나물은 '곰취, 명이(산마늘), 두릅, 눈개승마 등'이 있으며, 강원특별자치도 청정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이 주를 이룬다. 앞으로 더 깊어질 봄에는 일 년 중 딱 이맘때만 맛볼 수 있는 제철 산나물로, 남은 을사년 한 해를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초록 에너지'를 충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나에게는 봄날의 생기를, 영세 농가에는 한 해의 희망을 가져다주는 시간이 될 것이다. ◆ 이재우 강원지방우정청 주무관 강원지방우정청 회계정보과 소속으로 2022년 공직문학상 동화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우체국 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낀 감정들을 동화로 옮겨내 수상의 기쁨을 얻었다. 우체통과 편지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이지만 여전히 우체국에는 온갖 이야기를 담은 우편물과 택배가 가득하다. 이들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동화로 옮기는 중이다. 2025.03.18 이재우 강원지방우정청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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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단상 내 손 안의 '고마운' 모바일 주민등록증 내게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고마운' 주민등록증이다. 사용방법이 어렵지 않고,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 편리하기까지 한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오는 3월 28일부터 전국 어디서나 발급이 가능하다.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주민등록증을 스마트폰 속에 쏙 담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1968년, 종이로 된 주민등록증에서 56년 만이다. 내가 본 최초의 주민등록증은 발급일자가 1999년으로 시작하는 엄마의 주민등록증이다. 플라스틱 카드로 된 주민등록증 속 앳된 엄마의 얼굴이 신기했다. 주민등록증 일제 교체 때 면사무소에서 찍은 거라고, 그래서 사진이 영 어색하게 느껴진다던 엄마였다. 주민등록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일하는 지금,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받으려 하는데, 읍행정복지센터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라고 문의하는 전화를 종종 받곤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이제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하면서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그때의 분위기를 짐작만 할 뿐이다. 25년이 지났다. 읍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등록증에 들어갈 사진을 찍을 순 없지만, 우리가 늘 한 몸처럼 지닌 스마트폰 속에 주민등록증을 넣을 수는 있게 되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신분증을 제시한다. 시청, 읍면동 행정복지센터, 건강보험공단과 같은 공공기관을 비롯하여 은행, 병원, 공항 등 본인확인이 필수인 곳들에서 준비한 신분증을 내민다. 주류 구입을 위해 방문하는 집 앞 편의점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신분증의 중요성을 잘 아는 나 역시도 스마트폰은 한 몸처럼 가지고 다녀도 신분증은 깜빡하고 두고 올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무척 난감했다.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마트폰 갤러리 속 고이 잠들어 있던 '신분증을 찍은 사진'을 내밀고 싶을 정도였다. 읍행정복지센터를 찾는 민원인들도 신분증을 깜빡하고 두고 왔다고 말씀하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1차로 무인민원발급기에서 발급하시라고 안내한다. 하지만 인감증명서나 지적도, 전입세대 열람 확인서처럼 창구에서만 발급랑 수 있는 서류들이거나 무인기에서 발급이 가능하더라도 지문이 안 나오는 경우 어쩔 수 없음을 설명하고 민원인을 되돌려보내며 나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이제는 모바일 주민등록증 발급을 민원인께 권유한다.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IC주민등록증'을 발급받거나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QR 발급'을 받는 두 가지 방법으로 발급받을 수 있다. IC주민등록증은 IC칩이 내장된 주민등록증으로, 스마트폰에 가져다 대는 것으로 인식이 가능하다. QR 발급은 실물 주민등록증을 지참하고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하여 일회용 QR코드를 촬영해 나의 주민등록증을 스마트폰에 담을 수 있는 방식이다. 오늘 읍사무소에 지갑을 통째로 분실해 주민등록증을 재발급하러 오신 민원인이 계셨다. 평상시처럼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을 하고, 발급 신청 확인서(임시 신분증)를 드리려는데, 모바일 신분증 생각이 퍼뜩 났다. '모바일 주민등록증이라고, 방금 재발급받으신 신분증을 스마트폰 속에 담을 수 있는데, 발급해 드릴까요?' 하고 여쭤보니 민원인께서는 '나는 그런 거 잘 못해서, 내가 할 수 있을까?'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자신 없어 하시는 모습에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는 걸 낯설어하고 어려워하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침 점심시간이 한창이라 대기 중인 민원인도 없어서 선생님도 충분히 하실 수 있다며 천천히 발급 절차를 안내해 드렸다. 모바일 신분증 애플리케이션 설치부터, 본인인증, 정보무늬(QR) 촬영까지. 연신 어색해하던 어르신은 내가 더 알려드리지 않아도 어느새 안면인식까지 마치셨다. 그리곤 스마트폰 속의 주민등록증을 보며 계속 신기해 하셨다. 신분증을 잃어버려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걱정하시던 어르신이 앞으로는 모바일 신분증을 공공기관, 병원, 은행에서 활용하실 거라고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무인민원발급기 내 모바일 신분증 인증이 가능해진 화면. 더욱더 편리해진 점은, 창구뿐만 아니라 무인민원발급기에서도 지문 인식 대신 모바일 신분증 인증을 통해 본인확인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문 인식에 실패해서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지 못했던 민원인들이 이제는 모바일 신분증 애플리케이션 내 QR코드 촬영을 통한 인증으로 주민등록, 가족관계등록부, 국세, 지방세, 보건복지, 농지대장 등 대부분의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신규 주민등록증 발급 대상자에게 IC주민등록증을 홍보하는 귀여운 엽서들. 오늘 나는 2008년 3월생, 신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야 할 학생들에게 주민등록증 발급 통지서를 보냈다. 최초 발급 시 IC 주민등록증이 무료임을 함께 안내하며 주민등록증의 변화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체감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행정 제도와 시스템을 이해하기 쉽도록 민원인께 안내하고, 관련 업무를 원활하게 처리하는 것이 우리 공무원들의 일임을 느낀다. 다시 한번 내가 하는 이 업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고마운' 주민등록증이다. 사용방법이 어렵지 않고, 실생활에서 사용하기에 편리하기까지 한 모바일 주민등록증은 오는 3월 28일부터 전국 어디서나 발급이 가능하다. 특히 만 17세 신규 발급 대상자들이 무료로 IC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산뜻한 출발을 하길 바란다. ◆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충주시에서 민원담당으로 일하며 겪은 일상을 수필로 쓴 글이 등단의 영광으로 이어졌다. 공직 업무의 꽃인 '민원 업무'로 만난 수많은 일화들이 매일 성장통이자 글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내가 건넨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2025.03.13 김윤서 충주시 주덕읍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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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단상 우리가 도서관으로 향하는 이유 '소란'의 장소 혹은 '정숙'의 장소를 넘어 도서관을 다시 그려내는 것이 사서의 일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장벽을 거두어내기 위해서는 도서 대여를 제외한 도서관에 가기 위한 온갖 핑계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눈내리는 삼월에 텅 빈 항아리에 눈이 내리고 쌓인 그리움은 비가 된다 허허로움을 차곡차곡 접어젖은 편지를 쓴다 어둠에 잠긴 세상에 수묵의 그림이 펼쳐진다 눈꽃이 피고 떨어지고 쓰러져 있는 봄을 일으킨다 - 한숙희 詩 '도서관의 러브레터' 언젠가 영재를 대상으로 하는 한 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 공공도서관을 본 적이 있다. 꽤 오래전 일인 것 같은데도 기억이 온전한 것은 그 내용이 주는 신선함 때문이었다. 아버지만의 공부법을 상세하게 설명해 줬는데, 그 공부법은 다름 아닌 공공도서관과 관계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공공도서관을 찾아 열 차례 넘게 이사를 다녔고 도서관 앞에서 소소한 일상을 보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는 대신 도서관을 즐거운 곳으로 만든다. 도서관 앞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운동을 같이 하거나, 땀을 흘린 후에 도서관에 있는 식당에서 간식을 먹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한 아버지의 공부법에 마음을 빼앗겼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의 이유는 그 프로그램이 방영될 즈음 생겨난 도서관에 대한 인식 변화였다. 과거까지 도서관은 긍정적인 장소였던 것 같다. 무미건조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 집 앞에 도서관이 있다면?'은 한 번쯤 고려해 볼 수도 있은 옵션이었다. 그러나 그프로그램이 방영되던 시기에도서관은 님비(NIMBY)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도서관 이용자 수의 증가가 소음과 교통 체증을 만들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썼다. 이 때문에, 집값이 비싼 지역에서는 도서관 건립이 반대되는 현상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시점에 한 아버지의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가, 그리고 그 종착지가 도서관이라는 점이 사서인 나로서는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둘째의 이유는 프로그램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도서관에서 보내는 장면을 보며 이제는 다 커버린 나의 아들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봄을 기다리고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전경.(필자 제공) 두 아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나는 특근으로 인하여 주말에 자주 도서관으로 출근했다. 남편은 아들들을 데리고 퇴근 시간 1~2 시간 전에 도서관으로 놀러 오곤 했었는데, 보통은 도서관 어귀에서 간단한 운동을 했던 것 같다. 내가 퇴근길에 도서관을 나와 먼저 마주치는 것은 도서관 앞에서 재밌게 놀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이따금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 도서관 주위에서 노는 아이들이 괜스레 반가울 때가 있다. 그렇게 세월은 더 흘렀고, 사서들은 더 커져 버린 도서관에 대한 통념과 마주하고 있는 것 같다. '소란'의 장소 혹은 '정숙'의 장소를 넘어 도서관을 다시 그려내는 것이 사서의 일은 아닐까? 2017년에 개봉한 프레더릭 와이즈먼(Frederick Wiseman)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EX LIBRIS : The New York Public Library)는 같은 지점에서 큰 도전을 안겨주었다. 뉴욕 라이브러리에서의 도전은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업무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해주었다는 점에 있다. 돌봄 교육, 강연, 예술·전시, 채용·상담, 오락에 이르기까지 도서관이 일상과 맞닿아서 가지는 업무들을 소개한다. 안타까운 것은 뉴욕 공공도서관뿐 아니라 한국의 공공 도서관들도 이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쩌면 낡은 이미지를 청산하는 작업이 필요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장벽을 거두어내기 위해서는 도서 대여를 제외한 도서관에 가기 위한 온갖 핑계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소박하지만 참해요 만나보면 좋아질 거예요 자꾸자꾸빠져들 거예요 비벼서 펼쳐보면 향기에 눈이 부실 거예요 낯설지 않은 미소행복해질 거예요 그렇게 만나면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시간을 보내요 한가운데에 멈춰요 잠시 가지런히 하고서다시 가면 돼요 - 한숙희 詩, '이달의 추천도서' ◆ 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국립중앙도서관 국제교류홍보팀 근무, 2021년 공직문학상 시 부문 은상 수상, 같은 해 시인정신으로 등단했다. '우리가 행복한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출근하는 36년 차 사서이자 도서관에서의 일상을 시로 구현해내는 시인이기도 하다. 2025.03.11 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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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기행 푸르고 푸르다! 담양 죽녹원과 암뽕순대 많은 사람이 평안함과 따뜻함을 찾는 고장 '담양(潭陽)'은 먼 옛날 고려 때부터 담양이라 불린, 이름 그대로 물과 햇볕이 풍요로운 땅이었다. 그래서일까? 하늘을 찌를 듯 푸르디푸른 대나무와 단풍이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 길, 그리고 물길 따라 유려하게 펼쳐지는 관방제림은 생각만 해도 시원하고 청초하면서 뭔가 운치 가득하다.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봄이 왔건만 아니온 것과 같다는 '춘사불래춘'는 서시, 양귀비, 우희와 함께 고대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는 절세미녀 왕소군 이야기다. 흉노와의 화친 정책에 의해 흉노족에게 시집가 왕의 애첩이 되었으나 고향을 그리며 "오랑캐 땅은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라고 한탄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봄이면 널리 인구에 회자되는 이 글귀는 시인 동방규가 왕소군을 그리며 지은 것이다. 많은 사람이 평안함과 따뜻함을 찾는 고장 '담양(潭陽)'은 먼 옛날 고려 때부터 담양이라 불린, 이름 그대로 물과 햇볕이 풍요로운 땅이었다. 그래서일까? 하늘을 찌를 듯 푸르디푸른 대나무와 단풍이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 길, 그리고 물길 따라 유려하게 펼쳐지는 관방제림은 생각만 해도 시원하고 청초하면서 뭔가 운치 가득하다. 유난히 꽃샘추위와 눈발이 만연한 2025년,일찌감치 봄을 느끼기 좋은 푸르디푸른 땅, 전라남도 담양으로 향한다. 어쩌면 방송작가 생활하면서 전라도의 대도시 광주나 목포보다 더 많이 찾아간 곳이 담양인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담양은 작년 기준 1576만 명의 방문객( 한국관광공사의 '한국관광데이터랩' 기준)이 다녀간 대표 관광지다. 로컬100에 담양을 대표하는 대나무공원 죽녹원(竹綠苑)과 국내 가장 예쁜 길로 널리 알려진 메타세쿼이아 길, 그리고 관방제림 등 담양을 대표하는 명품숲이 이름 올린 것은 당연하다. 사실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방송'과 '글'을 직업 삼은 내게 담양은 숲의 땅이라기보다 가사문학의 땅으로 먼저 다가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한때 소쇄원이 주는 담박한 문취에 위로받던 쓸쓸한 시절도 있었다. 꽉 막힌 조선의 조정과 불화했던 사림(士林)들은 무등산 정기 어린 담양 일원에 누와 정자를 짓고, 빼어난 자연경관을 벗 삼아 시문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정치와 선을 긋고 오직 대쪽같이 올곧은 선비 정신 계승에 힘썼던 이들은 국난이 일었을 때는 분연히 일어나 무기를 들고 앞장섰다. 아들 고인후와 같이 전사한 고경명 같은 의병장이 바로 이 땅의 사림이다. 이것이 호남 사림들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였다. 이런 꼿꼿한 사림들이 나고 자란 담양의 대나무 공원 죽녹원은 바람 세찬 2월에도 한결같은 푸르름으로 반겨주었다. 약 31만㎡의 울창한 숲이 펼쳐진 죽녹원은 2005년에 개원한 국가지방공원이자, 이곳의 대나무숲은 국가 산림문화자산이다. 산림문화자산이라는 단어가 생소한데, 생태적, 경관적, 정서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큰 유형·문형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담양 죽녹원. (필자 제공) 사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대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그러나 연평균 기온이 12.5℃로 매양 따뜻하면서 연간 강수량이 1300㎜로 고온다우한 담양은 대나무가 자라기 최적의 환경이었다. 영산강 상류가 임야를 가로지르면서 담양의 토지가 비옥한 것도 한몫했다. 그 덕에 우리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그저 오래된 이야기로만 만날 뻔한 대나무 숲을 이토록 멋스럽게 거닐 게 된 것이다. 죽녹원 입구에서 나무 계단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면 대나무가 선사하는 초록 향연에 눈이 시원해진다. 그리고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대숲 바람이 일상에 지친 심신이 깨어나면서 귀로 또 한 번 대나무를 즐기게 된다. 푸른 대나무 사이사이 쏟아지는 햇빛과 햇볕은 안온하고 아늑하다. 연신 카메라를 들면서 영화 '봄날은 간다'의 주인공들처럼 푸른 바람의 찰나를 어떻게든 담으려 애를 써 본다. 이대로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걷겠다 싶은데, 이렇게 대숲을 거닐며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총 2.4km의 산책로가 마련돼 있다. 운수대통 길, 죽마고우 길, 철학자의 길, 선비의 길 등 총 8가지 주제로 저마다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대숲 길을 기호 따라 골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적게는 2~3분 많게는 15분~20분 코스라 남녀노소 누구라도 편히 대나무가 주는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마음껏 섭취할 수 있다. 약 45cm쯤 돼 보이는 대나무 한 마디가 자라는 데 약 40일에서 45일 걸린다니, 하루에 1cm씩은 자란단 말이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지 싶다. 그런데 손 닿는 대나무마다 칼로 이름을 새겨 넣거나 하트를 그려 넣어 상처 난 게 눈에 밟힌다.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그래도 대나무들이 이런 생채기 따위에 굴하지 않고 하늘 높이 치솟는 것에 안도한다. 게다가 대나뭇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죽로차(竹露茶)가 자생하고 있다. 죽녹원 바깥에는 갖은 대나무 기념품 등 볼거리와 먹을거리도 쏠쏠하다. 죽녹원 답사 후 찾아간 식당은 원래 담양시장 안에서 '암뽕순대'를 팔다가 시장 개발과 함께 이전한 30년 업력의 가게다. 아마 '암뽕'이라는 단어는 전라도 사람이 아니고서는 잘 모를 것이다. 암뽕은 새끼보, 아기보와 같은 말로, 돼지나 소의 태반과 자궁을 식재료로서 일컫는 단어다. 정체를 알고 나면 좀 거북하고 미안하긴 하지만, 여느 내장과 마찬가지로 고소하고 쫄깃해서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부위다. 암뽕은 다른 내장들에 비해 냄새가 심해 씻고 삶거나 요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전라도의 향토음식 '암뽕순대'는 암뽕이라는 이름이 붙긴 했으나 이것으로 순대를 만드는 것은 아니고, 돼지 '막창'에 속을 채워 만든 순대를 암뽕순대라 부르고 있다. 암뽕순대.(필자 제공) '삼겹살 랩소디'를 제작할 때도 느꼈지만, 그 옛날 돼지란 곧 축제였다. 털 한 모도 버리지 못해 구둣솔을 만들고, 오줌보로 공을 차고 놀았다는 돼지! 그 부속을 어찌 버렸으랴. 암뽕마저도 귀한 식재료였을테고 그 이름은 '암뽕순대'에 오롯이 남아있다. 돼지막창 역시도 냄새가 역하기 쉬운 부속.속을 뒤집어 불순물과 지방 덩어리를 깨끗하게 제거하고 소금이나 밀가루로 깨끗하게 씻어내기를 여러 번 해야 특유의 잡내를 잡을 수 있다. 그 다음 대파, 양파, 숙주, 당면 등 여러 재료로 막창을 채우는데, 전라도의 많은 가게에서는 숙주도 아닌 콩나물을 애용한다. 콩나물이 순대 소에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아예 암뽕순댓국 국물에도 들어있다. 그래서일까? 국물이 여느 순댓국처럼 진하고 텁텁한 게 아니라 맑은 갈비탕처럼 깨끗하면서 콩나물국밥처럼 시원하기도 하다. 종래의 암뽕순대국과는 확연히 차별된다. '암뽕순대'라는 이름의 원형 '암뽕'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쫄깃하고 고소한 '막창'의 특징을 잘 살려서 속은 부드러우면서 씹는 맛은 살아있는 막창순대를 기가 막히도록 잘 구현했다. "돼지 막창이 잘 보면 두께가 달라요. 어느 한 쪽은 굵고 어느 한 쪽은 가늘어요. 그래서 속을 넣고 잘 삶은 다음에 막창이 두꺼운 쪽은 더 푹 삶아서 국밥으로 내고 막창 두께가 좀 덜한 쪽은 접시순대로 냅니다." 담양시장에서만 25년 장사했다는 주인 이정숙(74) 씨의 노하우가 확실히 엿보이는 암뽕순댓국, 아니 엄밀히는 막창순댓국이다. 속도 어찌나 보드라운지 꼭 요샛말로 '크리미' 하달까? 암뽕순댓국.(필자 제공) "옛날에 이 지역 사람들은 순대를 대나무에 넣고 찝니다. 그러면 대나무기름과 돼지 기름이 어우러져 잡내도 싹없어지고 훨씬 순대가 맛났지요. 같은 대나무는 세 번 이상 사용하지 못해요. 대나무 기름이 싹~빠지니까 더 이상 쓸모가 없지요." 대나무로 필통이나 컵, 의자까지 만들지만, 여전히 음식을 만들 때도 이리 활용하고 있다니 놀라웠다. "예전에는 식당 바깥에서 조리가 가능했으니까 찜통 자체가 엄청나게 컸어요. 그래서 대나무를 1m 길이로 잘라서 한꺼번에 순대 삶는 게 가능했는데, 요새는 실내로 찜기를 들여야 하기 때문에 40~60cm 정도로 짧게 잘라서 사용합니다." 이렇게 대나무에 넣어 한 시간 반 정도 찐 대나무암뽕순댓국. 쫄깃하고 녹진하면서 시원하고 구수한 이 맛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춘사불래춘이라더니,아니올씨다. 봄은 벌써 흔들리는 저 댓잎 마디마디에,그리고 우리의 코와 입에 진작 당도했다. 이제 쭈욱~~ 기지개 펴고 일하러 가자!!! ◆ 죽녹원 ㅇ 주소|전남 담양군 담양읍 죽녹원로 119 ㅇ 영업시간|매일 09:00 - 18:00 / 입장료 있음 ㅇ 문의|061-380-2680 ㅇ 누리집|www.juknokwon.go.kr ※ 자세한 사항은 누리집 참조 ◆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KBS '한식연대기', 넷플릭스 '삼겹살 랩소디', 스카이트래블 '한식기행 - 종부의 손맛' 등 우리 식문화를 소재 삼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집필했다. 방송작가 23년 차지만 언제나 현역~! 지역마다의 고유한 맛과 멋을 알리는 맛깔난 글을 쓰고 싶다. 2025.03.06 이윤희 방송작가, 로컬문화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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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고령화 대극복 출산율 반등, 남성 육아와 기업참여가 이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남성 육아 참여와 기업의 육아 지원 제도가 자리 잡아야 한다.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지난 2월 26일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이 일시적인 반등을 보였다는 정부의 발표는 대한민국에 희망적인 신호를 주었다. 출산율 증가의 원인 중 하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남성의 육아 참여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아직 남성의 육아 참여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부족했으나, 최근 5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정부의 육아지원정책, 기업의 사내 육아지원제도 그리고 사회 전반의 노력이 모여, 출산율 반등의 긍정적인 신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저출생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요인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문화와 가치관의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남성의 육아 참여가 증가하지 않으면 출산율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과거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은 주로 경제적 지원을 담당하고, 가사와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전통적인 역할 분담에서 벗어나, 남성들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사회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실제 2021년 보건복지부 전국 보육조사 실태조사 중 아버지가 자녀출산 양육으로 인한 주된 경력단절의 이유 중 '일보다 육아 전담에 대한 가치 "(46.3%) 가 1위를 차지하고 2018년(7.8%) 보다 38.5% 크게 올랐다. 남성 육아휴직 제도의 도입과 확대는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첫걸음이다. 30~40대 남성들이 일·가정 양립의 중요성을 느끼고 육아휴직을 사용하면서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아내와 나누는 문화가 확산되었고 2024년 고용부 통계에 따르면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는 4만1829명으로 육아휴직급여 수급자의 31.6%를 차지했다. 이는 앞으로의 출산율 증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남성의 육아 참여는 가정 내 양성평등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여성의 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효과도 있다. 여성가족부 '2024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에서는 기혼 여성 가운데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 수가 2015년 207만 3000명에서 134만 9000명으로 34.9% 줄었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정책적 노력 외에도, 기업들이 육아 지원 제도를 확대하고 있는 것도 출산율 반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육아휴직이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은 드물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기업들은 남성 육아휴직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가족 친화적인 EFG(환경·가족·지배구조) 경영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 기업들은 이제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 직원에게도 불이익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육아휴직 후 직장 복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육아휴직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에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육아와 일의 양립을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남성들에게 육아에 대한 참여를 더욱 쉽게 만들고, 출산을 고려하는 부부들에게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한다. 이는 한국에서 둘째 아이 출산 비중이 다시 증가하는 등 출산율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남성 육아 참여와 가족 친화 기업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막을 올린 '제47회 베페 베이비페어'를 찾은 예비아빠가 유아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2025.2.6.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통계청 2024년 3분기 통계에 따르면, 둘째 아이의 출산 비중이 32.5%로 상승했다. 이는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과 기업의 육아휴직 제도 확장,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들의 육아 참여가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진 변화이다. 출산율 반등을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가정 내 역할 분담의 변화가 필요하다. 남성들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는 단지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나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이며, 가족 친화적인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특히, 남성들이 육아에 참여함으로써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예방하고, 부부가 함께 자녀를 양육하는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이제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성의 경제적 활동 촉진, 가사와 육아의 평등한 분담, 그리고 사회적 지원 시스템의 확장이 필수적이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남성 육아 참여와 기업의 육아 지원 제도가 자리 잡아야 한다. 남성들이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그 부담을 함께 나누는 가정과 사회가 만들어지며, 이를 통해 우리는 가족 친화적 사회, 출산율 회복, 양성평등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의 변화가 이끄는 출산율 반등은 정부의 정책, 남성들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 기업의 정책적 지원, 모두가 하나가 될 때 가능해졌다. 또한, 기업과 정부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맞물려 더 나은 육아 환경을 제공한다면, 한국은 조금 더 나은 저출생 극복의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 저출산고령화위원회 자문위원이자 가치자람사회적협동조합에서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으로 근무 중이다. 보건복지부 100인의 아빠단으로 활동하며 세 아이와 함께 소통하는 아빠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빠육아와 남성육아휴직 인식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5.03.04 김기탁 가치자람 아빠육아문화연구소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