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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싶다, 골목의 맛

허름한 시장에서 할머니가 말아주는 '제주 순댓국'

2026.02.05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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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국밥 한 자리를 차지하는 순댓국. 제주는 유독 순댓국의 역사가 깊다. 제주에서는 '큰일'이라고 부르는 혼례와 장례 문화가 있는데 그때 돼지를 많이 잡았다. 주로 여자들이 순대를 만들었다. 순대는 창자라는 고유의 모양 덕에 속에다 무엇이든 채워넣어 먹을 수 있는 기능적인 음식이다. 제주의 풍토가 만들어낸 이 한 그릇의 음식
박찬일 셰프
박찬일 셰프

오래 전 제주에 신혼여행을 갔던 누이의 기억 한 토막. 그때는 흔히 개인택시를 하루 이틀 대절(금액을 정해서 빌리는 것)해서 여행을 했다. 기사가 데려간 식당에 앉았더니 돼지고기를 내오더란다. 

문제는 시커먼 털이 숭숭 박혀 있는 껍질 붙은 고기였던 것. 그게 서울사람에게는 흔한 장면이 아니었다. 식욕이 떨어져서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신랑의 채근에 한 점 먹었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없는 고기 맛이었다고. 나도 처음 먹었을 때 한 급 다르다고 느꼈다. 

굳이 제주 돼지의 맛을 설명할 건 없겠다. 자, 여러분도 궁금해 할 질문 한 가지. 제주 사는 음식전문가 친구에게 그걸 물었다. 왜 제주 돼지는 맛있는가. 

"제주 사람들은 여기 돼지 맛있다고 하지 않아, 뭍 돼지가 우리 것보다 맛없다고 하지. 크하하."

알았다 알았어. 제주 사람들의 고기 자부심, '육부심'이라고 해야 활까. 하여튼 답을 찾자면 해석이 많다. 물이 좋아서 그렇다, 종이 좋은 거다, 사육기술이다 등등. 흑돼지는 그렇다 치고 이른바 '백돼지'는 육지랑 종(種)이 같은데 왜 맛이 그리 좋으냐고. 

제주고유 재래흑돼지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제주고유 재래흑돼지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고기가 맛이 좋으면 다른 것도 좋다. 이를 테면 뼈와 부산물을 이용하는 온갖 음식들. 제주 국밥은 순댓국과 해장국이 양분한다. 순댓국은 돼지이고, 해장국은 소다. 둘 다 전국 대표선수 자격이 있을 만큼 맛있다. 

하지만 제주에서 국밥이라고 하면 순댓국밥을 지칭한다. 그만큼 많이 먹는다. 외지인에게도 인기 있는 몸국이라는 것도 돼지 부산물로 만드니까 순댓국의 형제다. 요즘 제주 대표음식이 된 고기국수가 상업화된 것은 1980년대로 본다. 순댓국, 고기국수, 몸국. 죄다 돼지 음식이다. 

셋 다 제주식의 오랜 '큰일' 문화 덕에 번성했다. 큰일이란 결혼, 장례 같은 걸 뜻한다. 제주는 성씨가 적고 고립된 섬 문화, 특유의 끈끈한 유대관계 때문에 친인척 사이의 친밀도도 아주 짙다. 그걸 확인하는 게 혼인잔치며 장례다. 요즘도 잔치하면 삼일씩 내리 하는 전통을 지키는 집이 꽤 있다. 

이때 돼지를 잡는다. 요새는 맡겨서 사서 쓰곤 하지만 여전히 돼지를 몇 마리 잡느냐 하는 게 큰일의 핵심이다. 돼지를 잡으면 창자가 나온다. 여자들이 달라붙어 속을 채운다. 계절에따라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넣는다. 돼지 피가 중심이다. 진한 제주 순대의 탄생이다. 

제주에서 순댓국은 곳곳에 명가가 있는데, 나는 동문시장 광명식당에서 처음 먹었다. 허름한 노포에서 뜨겁게 토렴한 국물을 한 술 뜨자 속이 다 풀렸다. 적당히 야성적인 냄새가 살아 있다. 현대식 순댓국은 너무 깔끔하달까. 냄새를 다 지워버린다. 

제주 돼지 역사는 오래 되었다. 3세기경의 중국의 삼국지 위서나 5세기 후한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제주에서 돼지를 많이 기른 것은 여러 설이 있다. 화산재가 중심인 토양이 영양이 적어서 농사를 위해 비료를 얻으려고 돼지를 많이 길렀다고 한다. 이른바 돗거름(돼지거름)이 그것이다. 

물론 고기는 귀중하고 맛있으니 가능한 한 많이 기르려고 했다. 사육 환경에서 제주가 유리한 게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에서 순대는 오래 전부터 먹었다. 근대적인 순댓국 기록도 있다. 

"순대국은 도야지살문물에 기름은 건저버리고 우거지를 너어서 끄리면 우거지가 부드럽고 맛이 죠흐나 그냥 국물에 내쟝을 써러너코 졋국 처서 먹는것은 상풍(常風)이요 먹어도 오르내기가 쉬웁고 만이 먹으면 설서가 나나니라." <조선무쌍신식조선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1936년판에서. 초판은 1924년).

점잖게 '하느니라'하고 썼던 과거의 요리책이다. 그림이나 사진은 없고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100년 전 순댓국도 지금과 똑같다. 졋국(새우젓)을 쳐서 먹는 방식도 흡사하다. 저자는 서울의 유명한 음식평론가 겸 셰프 겸 한량이었던 이용기 선생이다. 그때 순댓국이 서울에서도 꽤 팔리는 것이었나 보다.  

하지만 지금처럼 싸고 만만한 음식은 아니었다. 당시 돼지 생산은 쉽지 않아서 나름 고급음식에 속했다. 순댓국이 전국적으로 흔해진 건 1970년대 현대적인 돼지 생산 덕이었다. 식용유 짜고 남은 수입콩깻묵 같은 사료가 풍부하게 공급되고 사육기술도 보급되면서부터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으면 당연히 창자가 많이 생기고, 순대도 덩달아 폭발한다. 값싼 당면 덕도 보았다. 당면으로 순대소를 만들면 가격이 거의 거저다. 순대 피와 약간의 자투리 채소, 당면이면 충분히 맛있는 순대가 된다. 지금도 당면순대는 식품 중에서 가장 싼 '고기(?)' 음식이다. 만 원이면 시장에서 거짓말좀 보태서 한 보따리를 받을 수 있다. 

허름한 제주의 시장에서 할머니가 말아주는 순댓국밥 한 그릇 하고 싶다. 제주에는 봄이 오고 있을 것이다. 

박찬일

◆ 박찬일 셰프

셰프로 오래 일하며 음식 재료와 사람의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다. 전국의 노포식당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오래 맡아 왔다.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저작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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