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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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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새 지평
G20 계기 중동·아프리카 순방…'글로벌 책임강국 실용외교' 기대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익 증진 실용외교의 성공에 더해 글로벌 책임강국으로서 한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모범적인 기여를 전 세계에 각인시킬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
G20 정상회의에서 주목받을 한국의 실용외교
이재명 대통령이 열흘간 주요 20개국(G20) 정상외교를 떠난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집트를 거쳐 남아공에서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튀르키예를 거쳐 귀국한다. 취임 이후 G7 정상회의에 이어 일본과 미국을 방문해 정상 간 신뢰를 구축했고,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국익 중심 실용외교의 우수성과 외교 역량을 과시했다.
이제 한미 외교와 경제 관계를 안정적으로 정립한 여력을 몰아 G20 정상외교를 수행해 글로벌 책임강국으로서 한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 실질적인 국익도 증진하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7일 오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아프리카와 중동 등 4개국 순방을 위해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1호기에 올라 있다.(ⓒ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특히 이번 회의에는 G20 정상회의 사상 처음으로 미·중·러 정상들이 참석하지 않으므로 한국의 위상은 더 두드러질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우 전쟁으로 예상대로 불참한다. 시진핑 주석은 내치를 우선시해 리창 총리를 보낸다지만 브릭스 회원국인 남아공이 주최하는 회의 불참은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의 신흥개도국)' 중시 외교에 벗어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초부터 남아공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남아공 정부가 백인 국민들을 탄압한다면서 계속 비난해 왔고 11월 7일 자신은 물론이고 밴스 부통령도 불참할 것임을 밝혔다. 이미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2월 남아공에서 열린 G20 외교장관회의를 보이콧(거부)했고, 베선트 재무장관도 G20 주제인 '연대, 평등, 지속가능성'이 '반미주의'라는 이유로 7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회의에 불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자 회의를 꺼리고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을 추진하므로 이번 회의가 거북스럽겠지만, 내년도 의장국인 미국의 불참은 두드러진다. 트럼프와 가까운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도 불참을 선언했다.
G20 회의는 G7에 더해 브릭스 5개국, 믹타 5개국(MIKTA: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튀르키예,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EU, 아프리카연합 등 21개 회원이 참여하는 최상위 국제 경제협력회의로 세계 총 GDP의 85%를 차지한다.
한국은 ODA 수혜국에서 공여국인 선진국으로 발전했고,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며 아태지역의 인공지능(AI) 허브로 발돋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올해 믹타 의장국이고 2028년 G20 의장국을 맡을 예정인 주요 회원국이다.
더구나 이재명 대통령은 AI의 발전으로 인한 혜택뿐 아니라 위험성과 불평등 강화 등 부작용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인류의 공동 대응을 강조하는 것을 비롯해 국제사회의 연대와 불공정 축소 및 포용적 지속 가능 성장과 협력 복원 등을 주창해 왔으므로 더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책임강국과 실용외교의 동반 성공 모색
따라서 이번 회의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익 증진 실용외교의 성공에 더해 글로벌 책임강국으로서 한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모범적인 기여를 전 세계에 각인시킬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캐나다를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16일(현지시간) 캘거리 한 호텔에서 열린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과 한-남아공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번 회의는 2050년 25억을 바라보는 현재 15억의 인구, 풍부한 핵심 자원, 그리고 디지털 혁신을 이끌어 갈 젊은 세대를 바탕으로 생산 및 소비 시장이자 세계 경제의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기회의 땅 아프리카를 부각시킨다.
점진적 관세 철폐를 목표로 55개 회원국이 가입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인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가 이미 2021년 1월 공식 거래를 개시했고, 아프리카개발은행 등이 설립해 이 지역에 투자를 원하는 해외 기업과 금융기관을 지원하는 금융 협력자로서 '아프리카50(Africa50)'도 활동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이 대륙을 책임강국을 실현하는 지원 대상이나 자원 개발 또는 원자재 수입 및 상품 수출 지역을 넘어 인프라, 디지털, 에너지, 자원, 보건의료에 대한 투자 협력자이자 문화 발전 등 공동 번영을 위한 한국의 포괄적 협력동반자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를 기술이전과 인재 양성 및 배터리, 컴퓨팅 등 인프라 투자를 통해 잠재력을 키워주면서 동반 성장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협력자로 삼는다면, 국익을 증진하고 글로벌 사우스로 다변화하여 실용외교의 또 다른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
27년 간 세종연구소에서 북핵문제, 남북관계, 한미동맹, 한러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한국의 국가안보와 국가전략을 연구했다. 한반도 정세 안정과 평화 구축 및 평화통일을 위해 화해와 공동번영 및 국익 극대화를 지향하는 실용외교를 주창해왔다. 국정기획위원회 외교안보 분과장을 맡았다.
2025.11.17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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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산업의 미래
GPU 26만 장과 내년도 AI 예산 확대가 갖는 의미
AI 예산 확대와 엔비디아 GPU 도입은 대한민국이 단순한 기술 수용국을 넘어 AI 기술의 선도자, 글로벌 리더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앞으로 국제 협력과 표준화를 주도하고, 글로벌 인재 유치가 가능해지며, 사회 전체의 혁신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엔비디아로부터 26만 장의 최신 GPU 도입. 상상하기 힘든 계획이 정말 놀라운 속도로 이루어졌다.
APEC 기간 중 발표한 엔비디아와 기술 동맹 선언 그리고 2026년 예산안 시정 연설은 우리나라 인공지능 역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AI 인프라 구축의 기반은 갖추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 숫자가 어떤 의미인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자.
영국과 엔비디아는 엔스케일, 코어위브 등과 협력해서 12만 장의 블랙웰 GPU를 공급하고 스타게이트 UK 프로그램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현재까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휴메인을 통해 엔비디아로부터 1만 8000장의 GPU를 공급받을 것이고 향후 5년 간 수십만 대로 확대할 수 있다고 했지만 아직 미국의 최종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픈AI가 노르웨이에 짓겠다고 하는 스타게이트 노르웨이는 2026년 말까지 10만 대의 GPU 설치를 목표로 한다. UAE는 5 기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목표로 하지만 초기에는 200MW로 시작한다. 아직 정확한 하드웨어 규모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전 세계가 국가 차원에서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엔비디아가 확인한 26만 장이라는 확정적 수치는 전세계에서 우리가 가장 큰 규모이다. 그래서 AI 미래기획수석이 브리핑에서 G3 수준이라고 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발표에서는 정부 차원이 5만 장 규모이고 삼성전자, 현대차, 네이버 등의 기업이 구축하는 AI 데이터센터를 함께 포함하고 있다. 용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명확한 것이다. 정부가 구입한 것은 향후 국가 AI 인프라의 역할을 할 것이고, 삼성전자는 차세대 반도체 공장을 위한 투자이며, 현대차 역시 AI 팩토리와 자율주행차 개발 등에, 네이버는 초거대 AI 개발과 서비스 고도화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차세대 모델 개발과 산업용 AI 전환을 위한 포석이고 피지컬 AI를 누구보다 먼저 구현하겠다는 의미이다.
혹자는 전력과 데이터센터 자체가 준비되지 않았는데 26만 장을 한 번에 사면 어떻게 하냐고 한다. 틀린 이야기다. 우리가 준비하면서 단계별로 구입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블랙웰 모델 하나로 구입하면 조만간 구식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것도 잘못 안 것이다. 블랙웰 모델 이후 최신 모델이 가능한 대로 순차적으로 구입할 계획이다. 삼성과 현대, 네이버 등의 기업이 참여한 이유일 것이다.
에포크AI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의 향후 투자는 훨씬 대규모이다. 메타의 하이페리온은 400만 장, 마이크로소프트의 페어워터는 500만 장 규모를 2028년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에포크AI의 데이터 참고 자료.(필자 제공)
나는 우리가 2030년까지 국가적으로 총 100만 장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가 전략 인프라로 20만 장 규모를 갖추고(이 숫자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AI 데이터센터이다), 산업용, 공공용, 국방용으로 여러 유형의 분산된 AI 인프라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준비 단계를 거친 것이고 앞으로도 다양한 투자 방식으로 다양한 목적을 갖는 AI 인프라 구축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을 통해 'AI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예산'이라고 선언했다. 매우 의미 있는 표현이라고 본다. 인터넷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예산, 모바일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예산이라는 말은 없었지만 세상은 두 가지 기술 기반으로 크게 변했다. AI는 인터넷보다 더 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주요 글로벌 기업의 CEO들이 하는 말이다. AI가 얼마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기술이 되는지를 명확히 인식해 국가 예산이 AI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은 아마 어느 나라 정부에서도 하지 않은 말일 것이다.
하드웨어 인프라 준비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대전환에 10조 1000억 원이 편성됐다. 산업·생활·공공 전 분야 AI 도입에 2조 6000억 원, 인재 양성 및 인프라 구축에 7조 5000억 원, 피지컬 AI 선도 국가 달성을 위해 로봇·자동차·조선·가전·반도체·팩토리 등 주요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AI 대전환을 신속하게 이루기 위해 향후 5년간 약 6조 원을 투입한다. 이러한 정책적 변화와 투자는 대한민국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AI 경쟁에서 선도국으로 도약하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준다.
1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AI 서밋 서울 엑스포 2025'를 찾은 참관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2025.11.10(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AI 예산 확대와 엔비디아 GPU 도입은 대한민국이 단순한 기술 수용국을 넘어 AI 기술의 선도자, 글로벌 리더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앞으로 국제 협력과 표준화를 주도하고, 글로벌 인재 유치가 가능해지며, 사회 전체의 혁신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국가 정책을 통해 건강한 AI 생태계를 조성해 스타트업, 중소기업, 대기업이 각자의 역할을 하며 혁신 기술 개발과 서비스로 산업 전반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해야 한다. 나아가 AI가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활용되어, 누구나 기술 혁신의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AI 기본 사회, 모두를 위한 AI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1회 졸업생으로 1980년대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종합기술원, 삼성전자 등에서 활동했으며 1999년 벤처포트 설립, 2003년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전략대표와 일본 법인장을 역임했다. 카이스트와 세종대 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테크프론티어 대표를 맡고 있다. 데이터 경제 포럼 의원, AI챌린지 기획, AI데이터 세트 구축 총괄 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는 AGI의 시대, AI 전쟁 2.0 등이 있다.
2025.11.12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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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경제
K-민주주의의 세계 무대 복귀와 주가 4000시대
남은 질문은 이 같은 성과와 주가 4000 시대를 어떻게 연결하느냐다. 핵심은 '리레이팅(평가 재상향)'이다. APEC은 이런 리레이팅에 큰 그림을 제공한다. 다자 협력으로 통상 불확실성이 낮아지고,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며, 규범·표준·인재 교류의 협력체계가 작동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에 투자할 때 요구하는 수익률을 낮춘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지난 10월말 경주에서 개최된 APEC은 성공적이었다. 한국은 불법 계엄을 극복하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국제 무대에 복귀했다. 의장국으로서 의제를 수렴하고 합의문을 도출했으며, 다자 규범과 양자 협상이 교차하는 복잡한 국면을 훌륭하게 관리했다.
이 같은 성공 뒤에는 'K-민주주의'라는 저력이 있다. 불법 계엄을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를 따라 수습해가는 과정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원리를 보여준 교과서적 모범 사례였다. 혼돈 후에 다시 국제 무대로 복귀했다는 메시지는 기술·자본·인재가 더 오래 머물게 하는 보이지 않는 인센티브가 된다. 텔아비브 대학의 라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인재 유출을 막는 주요한 요소이다. 민주주의는 당장의 성장률을 올리는 지름길은 아니지만, 투자자가 요구하는 위험프리미엄을 낮춰 국가의 자본조달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경제에 기여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는 '연결 능력'이 강점이다. 말과 원칙을 분명히 하되, 그것을 실제 계약과 정책으로 이어지게 해 산업·과학기술·금융 규제의 후속 과제를 한 흐름으로 묶어낸다. 외교가 수사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딜'로 이어질 때 비로소 경제성장의 조건이 마련된다. 이번 회담을 전후해 관련 부처들의 과제가 세트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외교가 정책과 시장을 정확히 연결했음을 보여준다.
기업 생태계에서도 물꼬가 트였다. 특히 AI 연산력과 관련해 국내 주요 사업자들이 고성능 GPU 26만 장 규모의 도입·공급·국내 데이터센터 확충 계획을 가시화한 것은 의미가 크다. 연산력은 AI 시대의 전력이다. 반도체, 전력망과 냉각, 네트워크, 인력 양성이 결합된 AI 인프라를 국내에 구축한다는 것은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된다.
트럼프 시대에는 다자간 협상보다는 일대일로 협상하는 양자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의 전략은 명확하다. 미국 같은 주요국과의 양자협상에서는 핵심 이익을 단단히 챙기되, 동시에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다자 협의체에서는 보조금·탄소·디지털 분야의 국제 규칙 만들기에 적극 참여해 위험을 분산해야 한다.
통상정책은 '완전한 승리'를 노리는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불확실성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과정이다.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아쉬움을 남기더라도, 핵심 품목의 관세와 무역장벽을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확정해 두면 기업들은 경쟁국들과 예측할 수 있는 경쟁을 할 수 있다.
3500억 달러 현금 투자 문제도 협상 과정에서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먼저, 마스가(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와 현금투자를 명확히 구분하면서도, 동시에 마스가 투자분을 현금투자 2000억 달러에 중복 계산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순수 현금투자 규모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또한 현금투자분도 단기간에 일시 투자하도록 강요받았다면 원화 가치에 엄청난 충격이 발생했을 텐데, 연간 200억 달러로 상한선을 설정함으로써 환율 변동성을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묶어냈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조건 안에서 경제적 안정성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비교적 잘한 협상으로 평가된다.
코스피 지수가 사상 첫 4000을 넘으며 종가 기준 최고치를 경신한 10월 27일 오후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종가가 표시되고 있다.(ⓒ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남은 질문은 이 같은 성과와 주가 4000 시대를 어떻게 연결하느냐다. 핵심은 '리레이팅(평가 재상향)'이다. 주가는 시중에 돈이 많아서만 오르는 게 아니다. 몇 가지 조건이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 첫째, 세제와 규제 정책이 일관되게 유지되어야 한다. 둘째, 공시·지배구조·의결권 등 자본시장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셋째, 산업이 고부가가치와 AI로 전환되어야 한다. 넷째, 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스튜어드십(주주권 행사)을 강화해야 한다.
최근 상법과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 이사회 책임 강화, 자사주 소각과 장기 배당정책 가이드라인 정착은 모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구조적으로 줄이는 퍼즐 조각들이다. 대주주 요건 합리화, 배당소득 분리과세 같은 세제 조정은 장기 자본이 한국 시장으로 들어오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 설계다. 세제가 바뀌면 투자자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기업 가치 평가가 달라진다.
APEC은 이런 리레이팅에 큰 그림을 제공한다. 다자 협력으로 통상 불확실성이 낮아지고,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며, 규범·표준·인재 교류의 협력체계가 작동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에 투자할 때 요구하는 수익률을 낮춘다. 같은 기업이라도 위험이 줄어들었다고 판단하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생긴다는 뜻이다. 외교 행사가 정책의 방향키를 제시하고, 자본시장 개혁이 자본의 체류 시간을 늘리며, 산업 전환이 현금흐름의 질을 끌어올릴 때, 주가 4000은 종착지가 아니라 또 하나의 출발점으로 읽힐 수 있다.
정책결정자에게 남은 과제는 세 가지다. 첫째, 예측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감세·규제·인허가 기준을 일정표로 제시해야 한다. 둘째, 집행력을 높여야 한다. 합의문을 부처와 공기업의 실행 과제로 내려보내야 한다. 셋째,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세제 개편 효과를 측정하고 공개해 시장과 소통해야 한다.
기업에도 숙제가 있다. 투명한 공시, 책임 있는 이사회, 중장기 배당·자기주식 정책의 명문화, RD·인재 투자에 대한 일관된 로드맵이 그것이다. 자본시장은 말이 아니라 반복 가능한 패턴에 보상을 준다. 투자자 역시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 현금흐름과 자본배분 정책의 정합성으로 기업을 평가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결론적으로, APEC을 계기로 확인된 외교적 능력과 자본시장·산업의 구조개혁이 맞물릴 때, 한국은 '위험을 관리할 줄 아는 성장국가'로 재평가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제거하지 않지만, 갈등을 관리하는 제도다. 그리고 시장은 바로 그 관리 능력에 프리미엄을 부여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약속이 아니라 더 정확한 이행일 것이다.
◆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美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2008년부터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공공경제·재정학(출산·지방재정·기초소득), 노동경제학(최저임금·고령자 노동), 복지정책평가(보육·빈곤), 조세정책(종부세·조특법), 빅데이터·데이터사이언스이다. 빅데이터연구소장을 맡아 정책 평가와 실증분석을 수행해왔다.
2025.11.11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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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경제다
앞으로의 길을 보여준 3분기 성장률
올해 3분기 성장률 1.2%는 코로나 팬데믹 충격이 집중된 2020년의 마이너스 성장률과 그에 대한 기저효과가 나타났던 2021년의 2년간을 제외하면 2021년 이후 최고치이다. 3분기 성장률의 의미는 최고치라는 수치 너머에 있다. 역대 최대 규모의 수출액을 달성한 가운데 가계소비와 내수의 강한 회복의 결과라는 점에서 성장의 내용이 정반대였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올해 3분기 성장률 1.2%는 코로나 팬데믹 충격이 집중된 2020년의 마이너스 성장률과 그에 대한 기저효과가 나타났던 2021년의 2년간을 제외하면 2021년 이후 최고치이다. 윤석열 정부 3년(2022년 2분기~2025년 1분기) 중 1.2%를 기록한 적은 2024년 1분기 때가 유일하였으니, '윤석열 정부 3년'을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3분기 성장률의 의미는 최고치라는 수치 너머에 있다.
아래 표는 윤석열 정부 3년의 분기당 평균 성장률 및 이번 3분기 성장률을 구성하는 주요 구성요소의 성장기여도를 비교한 것이다. 먼저, 3분기 성장률은 윤석열 정부 3년의 성장률보다 3.3배가 넘는다. 성장률 발표 후, 올해 1% 미만의 성장률을 전망했던 정부나 한국은행 등이 1% 이상이 될 것으로 입장을 낙관적으로 바꾼 배경이다. 표에서 보듯이 3.3배가 넘는 성장률을 만든 1등 공신은 윤석열 정부 3년 때보다 약 3.7배나 증가한 내수였다.
우리 경제는 1992년부터 그 이전의 두 자릿수 성장률 시대를 마감하고 계속 하락해왔는데, 핵심 원인은 내수 성장기여도의 지속적 하락이었다. 예를 들어, 외환위기 직전 6년간(1992~97년) 연평균 성장률은 7.8%를 달성했는데, 이중 내수 기여도의 비중이 92%였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부터 팬데믹 직전 기간인 22년간(1998~2019년) 연평균 성장률은 4.1%로 하락했는데, 내수 기여도 비중은 78%로 하락하였다. 팬데믹 이후 5년간(2020~2024년) 연평균 성장률은 2.0%로 하락했고, 내수 기여도 비중도 70%로 하락하였다. 그런데 이번 3분기 성장률의 내수 기여도 비중은 94%로 급등하였다. 내수의 중심에는 가계소비가 있다.
이전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가계소득 증가율의 지속적 둔화에 따른 가계소비 증가율이 빠르게 둔화한 것이 성장률 하락의 핵심 원인이었다. 외환위기 이전 6년간 급여생활자와 자영업자로 구성한 경제활동자의 1인당 실질 소득의 연평균 증가율은 4.1%였으나 그 후 22년간(1998~2019년)은 연평균 0.9%로 급감하였고, 급기야 팬데믹 이후 지난 5년간은 연평균 0.8%로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가계소비의 연평균 성장기여도 역시 앞의 기간 동안 각각 3.9%p(51%)에서 1.5%p(37%), 그리고 0.5%p(25%)로 줄어들어 왔다.
물론, 3분기 성장률이 내수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표에서 보듯이, 순수출의 성장기여도 역시 윤석열 정부 3년간 평균보다 2.5배나 높은 것이었다. 트럼프 리스크 속에서 3분기 수출액 1850억 달러는 분기 수출액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3분기 무역흑자 226억 달러도 팬데믹 이후 분기 기준 최대 규모였다.
3분기 성장률은 윤석열 정부 12분기 중 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2024년 1분기의 성장률 내용과도 비교가 된다. 2024년 1분기 성장률 1.2%p는 성장기여도에서 내수 0.7%p와 순수출 0.6%p로 구성되었고, 내수 0.7%p 중 가계소비 기여도가 0.3%p였다. 올해 3분기의 내수와 가계소비 성장기여도보다 각각 0.4%p와 0.3%p 작았다.
순수출의 성장기여도는 외형상 2024년 1분기가 0.5%p 컸으나 내용을 보면 정반대이다. 무엇보다 2024년 1분기의 수출액은 1633억 달러로 올해 3분기보다 217억 달러가 적고, 수입액도 1548억 달러로 76억 달러가 적다. 게다가 2024년 1분기 수출액은 그 이전 분기인 2023년 4분기 수출액 1681억 달러보다 48억 달러가 줄어든 규모이고, 수입액도 2023년 4분기 1586억 달러보다 42억 달러가 줄어든, 이른바 수출과 수입이 모두 감소하는 '불황형 흑자'가 바로 2024년 1분기의 순수출 성장기여도 0.6%p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처럼 성장률이 같아도 윤석열 정부 때는 취약한 가계소비와 내수 속에서 '불황형 흑자'의 결과였다면 올해 3분기 성장률은 역대 최대 규모의 수출액을 달성한 가운데 가계소비와 내수의 강한 회복의 결과라는 점에서 성장의 내용이 정반대였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물론, 3분기 가계소비와 내수의 회복은 언론이 보도했듯이 7월과 9월 두 차례 지급된 소비쿠폰 효과가 컸다. 그러나 경제학에서 소비에 대한 일시 소득의 제한적 효과를 말하듯이, 가계소비 회복은 1회성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소비자심리지수를 보면 탄핵 이후 정권 교체의 기대감이 높아진 올해 5월부터 100선을 회복하였고, 3분기(7~9월)에는 110대까지 상승했지만 9월부터 꺾이며 10월(109.8)에는 110 밑으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5월부터 90선을 회복하였던 기업심리지수 역시 7~9월에는 91선으로 상승했으나, 10월에는 91 밑으로 다시 내려왔다. 전월 대비 소매판매 증가율 역시 7월에 크게 반등했다가 8월과 9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자영업자 당 소매판매(2020년=100)도 7월에 104.7로 크게 상승했다가 8월과 9월에는 100 밑으로 다시 내려갔다.
소비의 취약성은 기본적으로 가계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급여생활자의 실질임금이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급여생활자 2026만 4000명의 8월 평균 실질임금은 338만 원으로 2021년 8월의 343만 원보다 적고 2020년 8월 수준보다 8000원이 증가했을 뿐이다. 이재명 정부 3개월(6~8월)의 월평균 실질임금 역시 347만 원으로 2021년의 351만 원보다 약 4만 원이나 줄어든 상태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임시·일용직의 8월 평균 실질임금은 2018년보다 낮은 144만 원도 안 되는 수준이다.
급여생활자와 자영업자의 소득이 개선되지 않는 한 가계소비와 내수의 회복은 지속하기 어렵다. 이처럼 가계소득의 구조를 제도적으로 강화하지 않고는 소비쿠폰 효과가 실종할 4분기 성장률은 다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민생과 성장률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가계소득 강화가 필수조건이다. 이전 칼럼에서 사회소득 강화의 불가피성을 주장한 배경이다.
물론, 가계소득 강화는 괜찮은 일자리를 공급할 수 있는 산업 역량에 달려 있다. 현재 트럼프 불확실성 속에서도 수출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지만, 반도체와 AI 주도만으로 양질의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단기적으로 어렵다. 미국에서조차 챗지피티(ChatGPT) 등 AI 모델이 활성화된 후 하이테크 분야 일자리가 급감하고 있다. 특히 하이테크 일자리 비중이 높은 캘리포니아 지역이 하이테크 일자리 감소를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력 산업인 제조업 일자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90년대 초 28%에 달했던 제조업 일자리 비중은 2001년에 20%가 무너졌고, 올해 9월에는 15%까지 무너졌다. 더구나 산업 체계의 지각변동이 진행된 지난 30년 넘는 기간 동안 제조업의 고부가가치화나 제조업의 공백을 메울 신산업의 성장이 성과를 내지 못한 결과 청년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15~29세 청년층의 일자리는 1997~2024년 사이에 159만 4000명이 감소하였고, 고용시장에서 가장 선호 대상인 이른바 '중고(경력직) 신입' 연령층인 25~34세 일자리조차 70만 8000명이 줄어들었다.
청년층 일자리 감소는 산업 체계가 제대로 진화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의 경우 16~24세 일자리는 79만 2000명이 증가하였고, 특히 대졸자 연령층인 25~34세 일자리는 378만 6000명이 증가했다. 미국의 경우 산업구조의 고부가가치화 및 신산업 등장 등 산업 체계의 다양화가 진행된 결과였다. 예를 들어, 고부가가치와 신산업은 1992~1997년간 성장률에서 0.6%p를 기여했으나, 2020~2024년간 성장률에서는 1.1%p로 기여도가 거의 두 배로 증가하였다. 반면 한국의 경우 같은 기간 동안 0.9%p에서 0.3%p로 줄어들었다. 지난 30년 산업정책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재명 정부가 산업생태계 전반을 재편하려는 배경이다. 문제는 산업 체계의 전면 재편은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불평등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가계소득과 소비 강화, 불평등 완화 등을 기대할 수 있는 사회소득 강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자 최배근 경제연구소 이사장. 건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사학회 회장,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대안학교인 민들레학교 설립자이자 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누가 한국 경제를 파괴하는가, 화폐 권력과 민주주의 등이 있다.
2025.11.10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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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일의 미래
젠슨 황이 한국으로 뛰어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철강부터 반도체까지, 조선부터 포털까지, 그리고 전 세계 최초로 5만 장의 최신형 GPU를 구매하는 정부까지 다 갖춘 곳이 대한민국이다이번 APEC은 포용적 AI, K-AI가 함께 반짝인 순간이었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좋은 일이 빌드업하며 찾아왔다!
9월 22일 유엔총회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이 예고도 없이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과 만나 인공지능(AI) 산업 투자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은 "래리 핑크 회장은 한국이 아시아의 'AI 수도(AI Capital in Asia)'가 될 수 있도록 글로벌 자본을 연계해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블랙록은 우리 돈으로 무려 1경 7000조 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다. 산하에 에너지와 AI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글로벌 인프라스트락처 파트너스(GIP)라는 투자회사와 역시 비슷한 일을 하는 뷔나(VENA) 그룹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의 AI 수도? 왜 지금? 왜 한국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우리나라 AI 대전환 및 AI 생태계 조성 가속화를 위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오픈AI 간 MOU 체결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범 정책실장,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 이 대통령, 최태원 SK 대표이사 회장,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강훈식 비서실장.(ⓒ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0월 1일에는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이 한국을 찾아 삼성그룹, SK그룹과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투자의향서(LOI)를 맺었다. 오픈AI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위해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 등 월 최대 90만 장의 고성능 D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90만 장은 현재 전 세계에서 생산되고 있는 모든 HBM의 2배가 넘는 물량이다.
이어 14일에는 세계 최고의 AI 설루션 기업 중 하나인 팔란티어의 알렉스 카프 대표가 서울로 날아와 글로벌 최초의 팝업스토어를 성수동에 열었다. 오픈런(문이 열리자마자 구매하거나 관람하기 위해 뛰는 현상) 대기 줄이 300미터를 넘어섰다.
아울러 30일에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삼성동 깐부치킨에서 이재용 삼성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치맥을 하더니 한국에 최신형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젠슨 황은 "이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GPU를 세 번째로 많이 가진 나라가 된다"고 말했다.
미국, 중국 다음이라는 얘기다. 영국, 프랑스, 독일이 가진 걸 다 합해도 우리가 확보한 30만 장(기보유분 포함)에 못 미친다. 현재 가장 최신의 GPU는 'GB200 그레이스블랙웰'이다. 블랙웰 슈퍼칩은 'A100' 대비 학습에서 10배 이상, 추론에서 100배 이상의 성능을 자랑한다. 'A100'으로 환산하면 300만 장에서 3000만 장을 갖게 된다는 얘기다.
왜 'A100'과 비교를 하냐고? 올 1월 중국의 딥시크가 터무니없이 적은 개발비로 미국의 최신 AI 모델에 맞먹는 모델을 내놓으며 전 세계 AI 업계를 충격에 빠트렸을 때 한국이 보유한 'A100'이 통틀어 2만 대가 안 됐기 때문이다.
그때 필자가 한 프로그램에서 "우리는 실력이 없는 게 아니라, GPU가 없는 거예요"라고 한탄했다. 그런데 불과 10개월 뒤 'A100' 300만~3000만 장 분량의 컴퓨팅 파워를 갖게 된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에 산다는 건 결코 심심할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접견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현대차, 엔비디아의 국내 피지컬 AI 역량 고도화 협약 관련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이 대통령,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덜 알려졌지만, 아주 중요한 것도 있다. 엔비디아는 대한민국의 산학연과 지능형 기지국(AI-RAN, Radio Access Network) 공동 연구를 위한 협약을 맺고 실증 AI 서비스 검증과 표준화 공동 추진을 하기로 했다. 대한민국 이전 세계 연구자와 기업에 개방된 AI-RAN 글로벌 테스트베드로 도약할 수 있도록 협력한다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하지?
'피지컬 AI'라는 게 있다. 지금까지의 AI는 질문에 대답하고, 그림을 그렸다. 뇌 역할을 했다. '피지컬 AI'는 몸체를 갖춘 인공지능을 말한다. 즉 로봇, 자율주행차, 드론, 스마트팩토리의 AI로 작동하는 기기들을 말한다. 몸체를 가지고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을 한다. 진짜 돈이 되는 건 '피지컬 AI'다.
'피지컬 AI'는 2가지 문제를 가진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작은 기기에 그만한 고성능 칩을 다 담을 수가 없다. 배터리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원격 클라우드로 보내서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만 오가는데 지연이 돼서도 안 된다. 이걸 해결하는 게 AI-RAN이다. 가장 가까운 기지국에서 분산된 두뇌 역할을 해준다. 멀리 클라우드로 가기 전에 '초저지연 실시간 제어'를 가능하게 해주는 핵심 인프라다. 이것도 함께 개발하자는 것이다.
이제 빌드업의 조각을 맞출 때다. 왜 이렇게 좋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을까?
AI는 데이터가 있어야 학습한다. 제조 공장이 어디에 있나? 중국을 빼면 단연 대한민국이다. 산업데이터는 다 여기 있다. 미국에도 영국에도 공장이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마스크가 없어서, 휴지가 없어서 얼마나 곤란을 겪었던가. 그러니 래리 핑크든, 샘 올트먼이든, 젠슨 황이든, 알렉스 카프든 한국으로 뛰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강부터 반도체까지, 조선부터 포털까지, 그리고 전 세계 최초로 5만 장의 최신형 GPU를 구매하는 정부까지 다 갖춘 곳이 대한민국이다.
젠슨 황은 "지금이 한국에 특히 기회가 될 수 있는 시기"라며 "한국은 소프트웨어, 제조업, AI 역량이 있으며, 세계적으로 3가지 기본 핵심기술을 가진 나라가 몇이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은 "한국만큼 제조·기술·인재 역량을 모두 갖춘 나라는 없다"며 "한국 없이는 AI를 발전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일 경북 경주시 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제2세션에서 개회사를 통해 'AI 기술 발전',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라는 의제를 발표하고 있다.(ⓒ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좋은 일이 하나 더 있었다. 'APEC AI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이 합의문은 미국과 중국이 모두 참여한, AI에 관한 사상 최초의 정상급 합의문이었다.
그 안에 'AI 기본사회' 구현과 '아시아·태평양 AI 센터' 설립이 담겨 있었다. '아시아·태평양 AI 센터'는 대한민국이 설립을 주도한다. 즉 한국에 설립한다. 이 센터는 '국가별 AI 발전 수준 차이로 인한 기술 격차를 줄이고, 모든 회원국이 AI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며 공동 연구, 인력 양성, 지식 공유 등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의 AI 역량을 상향 평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모두의 AI'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기관이다. 'AI 기본사회', '모두를 위한 AI' 어디서 들어본 말 같지 않은가? 맞다. 대한민국 AI의 전략적 목표다.
대한민국은 제국주의 경험이 없이 바로 선진국이 된 유일한 국가다. 적당한 크기의 미들파워(중견국)다. 종속당할 두려움 없이 교류하기도 그만이다. 가수 지드래곤(GD)이 노래를 부를 때 정상들이 꺼내든 카메라 세례에서 보듯이 케이(K)-문화컬처에 빛나는 문화강국이기도 하다. 이번 APEC은 포용적 AI, K-AI가 함께 반짝인 순간이었다.
◆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래 일했으며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IT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
2025.11.06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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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를 넘어
한류 역사콘텐츠, 영어자막은 언제일까
지금이야말로 책임있는 한류콘텐츠 생산자들이 한국의 역사에 대한 콘텐츠 생산에 총력을 기울여야할 때다. 그러나 한국의 방송사들이 제작한 각종 역사다큐들이 유튜브에서 검색되지만 영어자막을 단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 방송사가 역부족이라면 한류를 중시하는 관계 정부기관에서 중요한 사업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다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올해 한류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한국을 찾는 관광객의 증가가체감될 뿐 아니라, 이 관광객들은 과거 소비위주의 관광으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고, 한복을 입어보거나 음식을 만들어 보는 등 여러 문화체험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새로운 경향을 보인다는 소식이다. 이 모두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큰 영향 때문이라는 논평을 여러 신문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한류를 오래 연구하고 관찰한 입장에서 한국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관심이 하나의 성공한 영화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30년 전에 시작된 한류의 영향력이 한국이라는 신흥 선진국에 대한 관심의 그릇을 채워왔고, BTS와 블랙핑크, 오징어게임이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같은 강력한 미디어 콘텐츠 뿐 아니라 성공적인 팬데믹 극복과 계엄이라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해결하는 응원봉의 물결 등 한국이 생산해 낸 모든 뉴스가 그 그릇을 채워 드디어 가시적으로 흘러넘치는 때가 왔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국립진주박물관에서 화력조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작한 단편영화 사르후 전투 (사진=유튜브 화면캡쳐)
입장을 바꿔서 우리가 어느 나라의 미디어문화와 그 나라가 생산하는 뉴스들에 이끌릴 때, 그 나라에 대한 미디어 콘텐츠를 보고 상품을 소비하다가 그 나라로 여행을 다녀오기까지 한 이후엔, 어느 단계로 관심이 옮아갈까?
더욱이 여행을 올 수 있는 여유가 없는 대부분의 세계인은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무엇으로 충족할 것인가? 한국드라마와 케이팝, 웹툰이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공급하는 생태계를 지니고 있으니, 그저 이런 새로운 문화상품을 열심히 소비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필자의 관찰에 따르면 지금이야말로 책임있는 한류콘텐츠 생산자들이 한국의 역사에 대한 콘텐츠 생산에 총력을 기울여야할 때다.
동아시아에서 가시화된 초기 한류현상은 아시아 방송프로그램시장에서의 방송권 거래에 기초했고,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의 매개로 글로벌 콘텐츠로서 전세계적에 유료로 제공되는 현재의 한류현상은 한류 콘텐츠가 글로벌 대중문화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한류의 현재를 보이지 않게 만들고 유지하고 있는 가장 방대한 힘은 전자와 같은 제도화된 유료콘텐츠 소비 뿐 아니라 유튜브와 인터넷의 개인간 스트리밍 서비스에 기초한 무료 콘텐츠들이다. 경제적으로만 판단한다면 후자는 전자의 저작권 이해를 위반하는 일이지만, 후자가 한류의 시장을 확대하지 않았다면 전자의 성공도 보장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서구의 명품브랜드의 이익과 짝퉁의 역할과도 유사하다. 방대한 짝퉁시장이 명품 원본에 대한 관심과 욕망을 최대화시켜서, 짝퉁이 가장 많이 유통되는 아시아시장에서 명품의 판매와 위력도 최고로 유지되는 모순적이면서도 상호보완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서 무료콘텐츠 소비는 한류현상의 중요한 측면, 문화공공외교 차원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띈다. 이 한류 애호자들이 한국의 역사와 전통에 관심을 지닐 때, 어떤 무료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을까?
한마디로 세계의 한국 관심자들은 지금까지 역사드라마로 한국역사를 접해왔다. 그런데 픽션으로 관심이 생긴 외국 시청자들이 온라인에서 한국의 역사에 대해 영어로 검색할 때 만나는 첫 번째 영상들은 한국에 관심있는 개인들이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근거없이 수집한 영상들로 편집된 한국사에 대한 마구잡이 해설들이고, 최근에는 생성형 AI를 동원한 더욱 기이한 내용들이 대량으로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KBS, EBS, MBC 등 한국의 방송사들이 만들어서 쌓아둔 한국에 대한 각종 역사다큐들의 방대한 분량이 유튜브에서 검색되지만 영어자막을 단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 또한 최근에 유튜브에 업로드되는 한국 역사전문가들이 만들어내는 양질의 콘텐츠 어느 것도 영어자막을 단 것은 아직 보지 못했다. 유튜브의 개인적인 역사물들이야 그렇다고 해도, KBS 등 공영방송사는 왜 역사물에 영어자막을 달지 않을까?
예산이 없어서라는 정답이 예상되는데, 대부분 한글 자막을 달아두었기 때문에 AI번역의 도움을 받아 전문가 검수를 거쳐 영어자막을 제공하는 일은 과거와 비교해 비교할 수 없게 쉬워졌다. BBC 다큐멘터리와 같은 전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지만, 이미 생산해 둔 프로그램을 요즘 감각에 맞게 재편집해서 영어자막을 달아서 체계적으로 공개하는 일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와 더불어 발전된 CG 역량과 고고학적 지식을 최대한 활용한 새로운 역사콘텐츠도 적극 지원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주 박물관 화력조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제작되었던 단편 재연영화 사르후 전투(2022)와 홍경래의 난을 다룬 정주성 1811 같은 작품, 공주박물관이 최근에 유튜브에 개봉한 한성475은 놀라운 성과이다. 이 두 개의 단편영화 제작비를 알 수는 없으나, 박물관의 젊은 학예사들의 기획력, 고고학적 사실과 역사학적 진실,최근 영상기술의 표현력이 만나서 이루어진 이 영상들은 우리가 한줄의 텍스트로만 접했던 중요했던 역사적 순간을 살았던 조상들의 번뇌와 고난을 생생히 되살리고 있다.
그러나 이 영상들에도 영어 자막은 없다. 방송사가 역부족이라면 한류를 중시하는 관계 정부기관에서 중요한 사업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다. 언제까지 한국역사가 매우 궁금한데 볼 게 없다는 말을 듣고 있어야 하나.
◆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한류 연구자로 정진하면서 팬덤 온라인 참여관찰로부터 데이터 분석까지 다양한 연구방법을 거쳤으나 스스로는 여전히 세상 속 의미의 생산을 묻는 기호학자라고 이해한다. 세계화와 디지털문화시대의 한류, 드라마의 모든 것, BTS길 위에서를 출판했고 넷플릭스의 영향, 한국문화산업, 한류현상의 이론화를 위해 국제적 연구자 네트워크를 가동하며 다년간 연구 중이다.
2025.10.30
홍석경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류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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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싶다, 골목의 맛
"경주 구경 마치고 국밥과 회국수를 먹었다"
경북 남부와 경남은 돼지국밥 지역이다. 경주도 그곳에 속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경주에서 국밥 한 그릇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다. 화려한 고대 도시에서 먹는 가장 근대적인 국밥이라니. 여기에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답게 회국수 같은 음식이 아직도 살아 있다. 경주의 맛을 다르게 즐기는 법
박찬일 셰프
나는 도시를 다니면서 음식을 먹는다. 도시 음식에는 화려함과 서민적 소박함이 같이 있다.
경주에는 우아하고 좋은 반상이 있는데, 나는 거리 음식, 민중 음식을 많이 찾아다녔다. 국밥이 그것이다. 달리 뜻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국밥의 순정이 좋아서였다.
순정이라니, 묻는 이들에게 딱히 뭐라 답할 말이 있는 건 아니었다. 재료를 우리거나 끓이고, 거기에 밥 한 그릇을 말아내는, 뚝배기나 대접에 턱 하고 담는, 그게 전부인 음식. 달리 꾸미거나 만질 일이 없는 투박함이라고 겨우 설명할 수 있을 '밥'이었다.
국밥은 문화권이 있다. 서울은 장국밥과 해장국에 설렁탕이고, 충청도는 올갱이국밥이며, 부산은 돼지국밥이다.
국밥은 사실 기름기 도는 화려한(?) 음식이다. 잘 나가는 도시의 물량과 돈과 에너지를 뒷받침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몰리지 않으면 국밥도 없다. 그래서 시장터에서 국밥이 성했다. 가장 빠른 패스트푸드였다. 바삐 먹고 일하러 가는 사람들의 음식이었다.
부산이 돼지국밥의 성지가 된 것은 임시수도 시절의 번다함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전쟁으로, 도시가 껴안을 수 있는 인구보다 몇 배를 넘겨 피난민을 받아서 꾸려가야 했던 부산의 숙명이 돼지국밥의 현재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을까.
한 그릇 말아먹고 뚝딱 일해야 겨우 하루를 넘길 수 있는 사람들의 운명이 그 국밥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경북 경주 태종로에 위치한 돼지국밥집 (사진=기고자 제공)
부산 돼지국밥을 먹으러 당일치기 고속열차를 자주 탔는데, 이것도 이력이 붙으니 이른바 '외연이 확장'되곤 했다. 부산 말고 다른 도시로 뻗어나갔다. 울산이며 포항이며 밀양이며 대구 같은 도시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부산의 유명 돼지국밥은 다른 지역의 이름을 달고 있다. 합천, 밀양, 포항 같은. 돼지국밥의 기원과 발전은 누구도 정설을 내놓을 수 없다. 민중음식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일하는 사람들의 기호로 도도하게 번져나간 것이 돼지국밥이다. 헌데 경주도 돼지국밥이 세다는 건 늦게 알았다. 내 친구가 그쪽 사람이다.
"경주 음식을 제대로 먹어본 타지인이 놀라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해산물이 좋다는 거. 경주를 내륙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아. 경주는 바다 도시야. 둘째, 돼지국밥은 부산만 알고들 있는데 경주도 한 가락 한다고."
경주는 노포 돼지국밥이 여럿 있다. 역사 있는 음식이다. 세련되고 장엄한 고대 도시의 면모에 돼지국밥 같은 허름한 서민 음식이 묘하게 어울려 있다.
도시 곳곳에 거대한 고분이 마치 길가의 장식물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불쑥불쑥 솟아 있는 비현실적 그림에 돼지국밥이 함께 한다. 고대 왕의 거대한 무덤 옆에 도시적 돼지국밥을 먹는 시민이 산다.
곁가지인데, 경주에 가서 들으면 유별난 대목이 있다. 첨성대에 올라가서(!) 놀았다는 노인의 증언이거나, 왕릉의 무덤에서 미끄럼놀이를 했다는 믿어지지 않는 무용담이다. 어찌 보면 유적 유물 관리라는 것도 나라에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국밥집은 반찬이 간결한 게 보통이지만 경주에서는 더러 반찬 많이 깔아주는 집도 볼 수 있다. (사진=기고자 제공)
경주는 인심의 도시다. 맛에도 묻어난다. 국밥 한 그릇에도 반찬을 깔아주는 집이 많다. 게다가 성실하게 토렴을 한다. 토렴은 주로 한국에서 성행해온 조리법이다. 고기와 밥을 상온에서 보관하고 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뜨거운 국물에 여러 번 데워내는 기술이다.
토렴이 발달한 건 이유가 있다. 삶은 고기와 밥을 상온에 두게 되는데, 뜨거운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이니 국물에 여러 번 열기를 입혀야 했다.
한 가지 더. 옛날에는 자기가 먹을 밥을 손님이 들고 오곤 했다. 국밥집이 밥을 모두 지어서 제공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받아든 밥이 식었으니 토렴을 하는 게 필수였다.
하여튼 경주에 가거든 노포 돼지국밥집은 물론이고 시장과 거리의 돼지국밥집 순례가 이어진다. 한 그릇 시켜놓고 진한 양념의 김치에 막걸리를 먼저 한 잔 마셔야 한다.
경주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여러 막걸리가 있다. 죄다 맛있으니 비교해가며 마신다. 첫 잔이 비기도 전에 뜨끈한 국밥이 나온다. 극락이란 이런 것이다.
노포라고 하면 대개 번듯하기보다는 낡은 곳이 많은데 흔히들 '아우라'가 느껴진다고 한다. 그렇다. 그 아우라는 주인의 고집이고 드나드는 손님의 흔적이며 가게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부심이다.
이름은 분식이고 국수를 주로 파는 집이 경주에 있다. 현재는 가게 터를 옮겼는데, 왕년에 갔을 때는 거의 쓰려져가는 낮은 지붕의 건물이었다. 그런 모습에 정감을 느끼는 것은 나그네의 과잉 감정이었을까.
국수를 넉넉히 말아낸다. 가게 이름이 '놋전'이어서 무슨 연유인가 물었더니 과거 그 동네에 유기장인들이 많았다 한다. 금속가공은 경주의 영화를 상징한다. 이 분식집, 아니 국수집은 경주가 바다 도시라는 걸 알려준다. 회국수가 있다.
바다, 특히 동해에서 경주로 이어지는 해안의 도시에서는 흔히 비빔국수에 회를 얹어먹곤 했다. 회는 지천이니 말린 국수가 끼니를 담당하던 시절에는 그렇게 먹는 게 일상이었다. 내륙 도시에서 자란 사람에게는 별난 풍경이리라. 그 비싼 회를 국수에 얹어먹는다니.
물론 이 가게서 파는 회국수는 그저 비빔국수 값이었다. 이 가게는 허물어지고 난 후 다른 곳으로 옮겨 여전히 영업하고 있다. 아직도 옛 맛을 간직하고 있는지 가볼 작정이다.
◆ 박찬일 셰프
셰프로 오래 일하며 음식 재료와 사람의 이야기에 매달리고 있다. 전국의 노포식당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오래 맡아 왔다. 백년식당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등의 저작물을 펴냈다.
2025.10.28
박찬일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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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APEC과 외교의 문
이번 '2025 APEC 정상회의'가 지속 가능한 한미 관계의 기반을 다지고, 호혜적인 한중 관계 발전의 기회로 삼으며, 달라진 세계에서 새로운 한일 협력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전환기일수록 평화가 중요하다. 튼튼한 평화의 땅에서 아름다운 번영의 꽃이 핀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
전환기의 국제질서에서 외교의 시간이 왔다. 외교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통점과 차이를 확인하며, 갈등을 해결하고, 협력을 모색하는 수단이다. 이번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지속 가능한 한미 관계의 기반을 다지고, 호혜적인 한중 관계 발전의 기회로 삼으며, 달라진 세계에서 새로운 한일 협력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물론 외교는 단거리가 아니라 장거리 경주이고, 한 번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길게 봐야 한다. 가야 할 길이 멀고 풀어야 할 숙제가 복잡하지만, APEC이 외교의 문을 열기를 바란다.
미·중 관계와 연결의 중요성
APEC은 다자 외교의 무대지만, 동시에 수많은 양자 정상회담이 열린다. 그중에서도 세계질서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가장 중요하다. 트럼프 2기에 이뤄지는 첫 번째 정상회담이고, 양국의 무역 갈등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최근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와 미국의 100% 추가 관세 위협이 부딪히면서,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세계 경제 질서가 출렁거릴 것이다.
미·중 양국의 전략경쟁은 '100년의 마라톤' 정상회담으로 일시적인 휴전이 이뤄져도 장기적으로 전략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양국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경쟁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지만, 다시 과거의 협력 시대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자원과 기술의 수출통제, 공급망의 분리, 상호 관세는 달라진 무역 질서의 '뉴노멀(새 기준)'이다.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간을 하루 앞둔 지난 26일 경북 경주역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설치한 외국인 관광객 환영 부스 관계자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물론 방향만큼 속도도 중요하다.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그리고 상호의존 관계에서 각자도생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고통이 따른다. 수출통제나 관세부과로 경제의 연결을 차단하고자 하는 시도는 시민의 삶을 어렵게 하고, 세계적으로는 무역 감소와 경제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이번 APEC의 첫 번째 핵심 주제인 '연결'이 중요하다. 세계는 산업의 분업으로, 노동의 이동으로, 기술 발전으로, 소통의 다양성으로 연결돼 있다. 연결된 세계를 끊고자 하는 시도는 부작용이 적지 않다. 미·중 정상회담이 전략경쟁이라는 방향을 틀지는 못하겠지만, 속도를 조절해서 고통을 줄이는 지혜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국제 무역 질서에서 연결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영역에서 새로운 연결을 강화해야 한다. 한중일 3국의 교집합을 찾고, 아세안과 더 높은 수준으로 협력하고,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급변하는 외교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변화로 선택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했고, 산업 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제조업 강국이며, 세계와 공명할 수 있는 문화강국이다.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연결을 시도해야 한다.
혁신과 디지털 시대의 윤리
두 번째 주제는 '혁신'이다. AI를 포함하는 기술 혁신은 사람의 일상을 바꾸고, 산업구조를 변화시키며,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기술 혁신이 지속 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특히 국내에서 그리고 국제관계에서 혁신의 성과가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진다면 지속가능성이 없다.
디지털 격차는 국내에서 세대 갈등과 경제적 불평등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는 경제력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부의 양극화를 더 벌여, 사회적 갈등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져온다. 정치가 부의 불평등으로 생긴 갈등을 치유해야 한다. 외교가 국가 간 기술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언제나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 기술 혁신의 성과를, 불평등을 완화하는 사회적 투자로 돌려야 한다.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간 시작을 하루 앞둔 지난 26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야외부지에 마련된 국제미디어센터(IMC)가 운영되고 있다.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기술 혁신의 시대에 인권과 윤리의 중요성도 더 커졌다. 세계적으로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가져온 혐오의 확산이 증오의 정치를 부추기고 있다. 기술 혁신의 속도만큼 디지털 시대의 윤리에 대해서도 인식의 확산과 제도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혐오 문화의 수출은 통제할 필요가 있고, 이번 캄보디아 사태처럼 국제적인 사이버범죄에 대해서는 공동 대응해야 한다. 아무리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하지만, 민주주의를 지키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가치의 연대는 여전히 중요하다.
'평화'의 땅에서 '번영'의 꽃이 핀다
세 번째 주제인 '번영'을 위해서는 평화가 중요하다. 긴장이 높아지면 국방비 부담이 커지고, 재정적자로 이어지고, 금융시장이 불안해진다. 동북아시아에서 한반도와 대만해협은 군사 분야에서 미·중 양국의 전략경쟁이 벌어지는 전선이다. 미·중 정상회담은 동북아시아라는 공간에서 군사의 시간이 아니라 외교의 시간으로 전환하는 계기다. 양국 모두 안보딜레마의 악순환이 아니라, 공동 번영의 지혜를 찾아내기를 바란다.
북미 관계 재개의 기회도 중요하다. 지난 30여 년의 북핵 문제 역사를 돌아보면, 기회를 잃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물론 현재의 국면은 어렵고 복잡하다. 교착의 시간이 길었고, 북한의 핵 능력이 높아졌고, 러·우 전쟁에 북한이 참여하면서 북러 관계가 달라졌다. 협상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러나 APEC이라는 외교의 문이 오랫동안 중단됐던 협상 재개의 입구라는 점은 분명하다. 북한과 미국 모두,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세계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APEC에 참여하는 많은 국가는 예측하기 어려운 정세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복합 위기의 강을 무사히 건너기 위해서는 공동의 지혜가 필요하다. 전환기일수록 평화가 중요하다. 튼튼한 평화의 땅에서 아름다운 번영의 꽃이 핀다. 지속 가능한 번영을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평화가 필요하다.
◆ 김연철 인제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
성균관대에서 북한의 정치경제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 문재인 정부때 통일연구원 원장,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이며,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협상의 전략(2016), 70년의 대화: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등이 있다.
2025.10.27
김연철 인제대 교수(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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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경제
한국 경제와 APEC
APEC은 정상회의를 넘어 '규범·네트워크·신뢰'의 플랫폼이다. 1989년 호주 캔버라에서 12개국 각료회의로 출범한 APEC은 현재 21개 회원이 참여하는 역내 최대 경제협력체로, 세계 GDP의 약 62%와 교역의 50%를 차지한다. APEC은 WTO처럼 관세를 직접 내리는 구속력은 약하지만, 통관·표준·디지털 무역 같은 실무규범을 조율하는 데 강점을 가진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2025년 한국경제는 위기 없이도 0%대 성장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KDI는 0.8%, 한국은행과 IMF도 0.9% 안팎을 제시했다.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이 현실이 되었고, 건설과 설비가 위축되며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한다. 추경을 통한 소비쿠폰이 자영업 매출을 방어하고, 반도체 회복이 수출을 떠받치지만, 대외 불확실성과 관세 변수는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올해 한국경제의 최대 난제는 '관세 지형의 급변'이다. 미국은 보편 관세와 품목별 관세의 이중구조로 무역질서를 다시 짰다. 7월 3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보편 관세율을 25%15%로 낮추는 데 합의했지만,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 규모의 에너지 구매를 약속해야 했다. GDP의 약 20%에 이르는 부담이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품목별로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자동차는 대체탄력성이 높아 관세가 소폭만 올라가도 수요가 일본·EU로 이동한다. 한미 협상에서 자동차 관세는 아직 25%로 묶여 있어 기존 FTA 무관세보다 크게 후퇴했고, 경쟁국과 같은 15% 보편 관세조차 적용받지 못한다. 반면 반도체·배터리는 장비·표준·생태계가 강하게 결합된 산업으로 대체 공급처가 제한적이다. 관세가 매겨져도 수요의 이탈이 제한적이므로, 미국의 산업정책과 보조를 맞춘 공동 표준·보안 규범, 국경 간 데이터 이동과 클라우드 접근성, 핵심 소재와 장비의 우호국 조달망을 협상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 철강·금속 등 전통 주력 업종은 관세와 쿼터의 이중 규제 속에서 생산·수출 계획을 전면 재설계 중이며, 정부는 유동성 지원과 내수 대체, 신흥시장 다변화를 병행하고 있다.
APEC 2025 정상회의장인 경북 경주시 화백컨벤션센터 모습.(ⓒ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복잡한 환경에서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은 정상회의를 넘어 '규범·네트워크·신뢰'의 플랫폼이다. 1989년 호주 캔버라에서 12개국 각료회의로 출범한 APEC은 현재 21개 회원이 참여하는 역내 최대 경제협력체로, 세계 GDP의 약 62%와 교역의 50%를 차지한다. 1994년 보고르 목표와 1995년 오사카 행동계획은 무역·투자 자유화, 비즈니스 촉진, 경제·기술 협력의 세 축을 세웠다. APEC은 WTO처럼 관세를 직접 내리는 구속력은 약하지만, 통관·표준·디지털 무역 같은 실무규범을 조율하는 데 강점을 가진다.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는 2005년 부산 이후 20년 만의 개최로, 한국에 전략적 기회다. 연중 200회 이상의 각급 회의, 21개국 정상과 6000여 명의 관료·기업인·언론인이 방문한다. 미·중이 모두 참여하는 장의 특성상 미중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지역 긴장 완화와 외부 불확실성 축소에 신호를 줄 수 있고,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자동차 관세 협상 타결의 계기도 될 수 있다. 특히 25% 관세가 인하되면 대미 경쟁력은 단번에 개선이 가능하다.
의제를 주도하는 개최국의 권한을 활용하면 가시적 성과를 만들 수 있다. 한국이 내건 주제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내일(Building a Sustainable Tomorrow)'이며, 중점과제는 '연결·혁신·번영(Connect, Innovate, Prosper)'이다. 구체적으로는 디지털 통상 규범(데이터 이동·신뢰·보안), 공급망 회복력(핵심 광물·배터리·반도체의 조달·재활용·추적성), 탄소중립 전환(탄소국경조정과의 조화, 중소기업 전환비용 지원), 무역 원활화(통관 디지털화·서류 간소화)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합의제·자발성 원칙을 감안하면, 앞선 국내 사례를 표준화해 '따라올 유인'을 설계하는 접근이 유효하다.
APEC이 주는 직접 이익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통상 규범의 선제 제안이다. WTO 다자체제에서 교착된 디지털·친환경·안보경제 결합 의제를 APEC에서 모범 규범과 가이드로 먼저 정립하면, 이후 양자·소다자 협정의 기본틀이 된다. 둘째, 공급망 신뢰의 확보다. 동일한 절차와 인증을 공유하는 신뢰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기업은 통관·인증·데이터 이전 비용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셋째, 정치적 위험의 분산이다.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도 APEC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다자적 대화의 공간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실행 전략은 무엇인가. 첫째, '차량반도체' 이원 전략을 가속하자. 자동차는 북미 현지화 비중을 과감히 높여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원산지 규범을 활용해야 한다. 완성차부품 동반투자와 멕시코 거점 확장은 관세 리스크를 줄이는 현실적 해법이다. 반도체·배터리는 규범 선도에 집중한다. 공동 RD와 표준·보안 체계를 전제로 한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면, 관세가 아닌 규범이 시장 접근성을 결정하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 둘째, APEC과 양자 협상을 연결하자. APEC에서 합의된 원활화 조치를 한·미, 한·멕시코, 한·캐나다 등 양자로 신속 이행해 실질 효과를 만든다. 셋째, 신흥시장 포트폴리오를 확대하자. 중남미·동남아에서 통관·표준 상호인정 시범사업을 추진하면 관세 충격의 완충재가 된다. 넷째, 중소기업 지원을 강화하자. 수출·관세 대응 바우처, 해외 규격 인증, 환변동 리스크 지원을 묶은 패키지를 확대하고, 2·3차 협력사의 북미 동반 진출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30여 년 전 보고르 목표가 그랬듯, 제도와 신뢰는 시장을 넓힌다. 2025년 경주 APEC은 그 출발선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현지화할 것은 과감히 현지화하고, 규범화할 것은 선도적으로 규범화하는 '현지화+규범화'의 투트랙으로 새로운 무역 지형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설계해야 한다. 저성장과 높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경제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전략적인 길이다.
◆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사, 美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2008년부터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분야는 공공경제·재정학(출산·지방재정·기초소득), 노동경제학(최저임금·고령자 노동), 복지정책평가(보육·빈곤), 조세정책(종부세·조특법), 빅데이터·데이터사이언스이다. 빅데이터연구소장을 맡아 정책 평가와 실증분석을 수행해왔다.
2025.10.23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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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산업의 미래
에이전트 기반의 AI 정부
에이전트 기반의 AI 정부 플랫폼이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완성하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정부 서비스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활용한 기술 스택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AI 기술 스택을 구성해야 하며, 이는 국가 CTO의 통찰을 통해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우리나라 전자정부의 역사는 50년이 넘었다.
UN이나 OECD 평가에서 늘 최상급 수준으로 인정받은 전자정부는 디지털 정부 플랫폼을 넘어 이제 AI 정부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AI 정부는 단순히 기존 전자 정부 플랫폼을 고도화하거나 개선하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우리가 기반한 기술 스택을 갖고는 AI 기술을 완벽히 구현할 수가 없다. IT 업계에서는 이런 과거의 기술이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것을 기술 부채라고 한다.
그럼 AI 정부는 어떤 기술 기반으로 해야 할 것인가?
AI 정부가 그냥 거대 언어 모델(LLM)을 이용해 기존 자료를 검색 증강 생성(RAG)이라는 기법을 사용해 신뢰할 수 있게 제공하고 모든 공공서비스에 챗봇을 붙여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처음 출발은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UAE(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가 제공하는 TAMM이 그런 사례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곧 AI 정부 플랫폼이라고 볼 수 없다.
아부다비의 TAMM 서비스
얼마 전에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나온 'GenAI Divide' 보고서에서 말한, 실제 배포 단계에서 보면 95%가 AI 프로젝트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결과의 근본 원인을 다시 살펴야 한다.
내부에서 활용하는 AI 모델이 상용 모델인 GPT-5, 클로드, 제미나이 등에 미치지 못할 경우 내부 인력은 여전히 상용 모델에 의존한다는 것이고, 전체 업무 흐름의 자동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단지 프롬프트를 넣어서 내용을 생성하는 방식으로는 조직에서 실감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은 장기적인 기억 등에 대한 기술 부족을 해결해야 하는 이슈도 있다.
이제 AI 기술은 에이전트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아키텍처와 프로토콜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전체 업무 플로우를 자동화하고 대 국민 서비스가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공공기관이 창출하는 다양한 데이터를 에이전트가 쉽게 접근하고, 에이전트 간의 협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아마존이 기존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자는 뜻으로 모든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새로운 아키텍처를 구현해서 나온 것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초창기 모델이 되었다. 기술 부채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을 AI를 기반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AI 네이티브 아키텍처가 필요한 이유이다.
또한 지금까지 사용한 개발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ISP를 만들고, RFP를 발행해 외주 업체를 구하고 이들이 개발하고 납품해서 실제 환경에서 활용하려면 2~3년이 필요할 경우도 있다.
AI 기술은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개발은 새로운 기술 스택을 사용하기 어렵게 만든다. 언제든지 새로운 기술을 채택하고 빠르게 개선할 수 있는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개발 조직과 정부가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 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정부 시스템의 UI/UX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물론 이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상호작용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이제 사용자는 메뉴를 찾고, 원하는 서비스를 파악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대화하면서, 자연스러운 문장을 통해서,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해서 바로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에이전트 기반의 AI 정부 플랫폼이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완성하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정부 서비스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활용한 기술 스택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AI 기술 스택을 구성해야 하며, 이는 국가 CTO의 통찰을 통해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국가 CTO가 있는가?
◆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1회 졸업생으로 1980년대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 주제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삼성종합기술원, 삼성전자 등에서 활동했으며 1999년 벤처포트 설립, 2003년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 전략대표와 일본 법인장을 역임했다. 카이스트와 세종대 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테크프론티어 대표를 맡고 있다. 데이터 경제 포럼 의원, AI챌린지 기획, AI데이터 세트 구축 총괄 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는 AGI의 시대, AI 전쟁 2.0 등이 있다.
2025.10.20
한상기 테크프론티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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